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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심사, 마애삼존 불상

입력
2014.06.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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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주

시인·극작가

여름이 되면 대학시절 도보 여행 중 본 마애삼존불상과 개심사의 풍경이 떠오른다. 이후로 두어 번 더 마애삼존불을 보러 개심사에 갔지만 그 고졸하고 그윽한 풍경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처음 마애불을 보면서 느끼는 경이는 장엄에 가까웠다. 흔히 서산 마애석불 또는 운산 마애석불이라고 부른다. 한국 석굴 사원사에서 시원적 형태를 보이는 마애불은 암벽위에 세워진 조형물이다. 어떻게 석공들은 저렇게 캄캄한 바위 속에서 저런 불상을 꺼낼 수 있었을까? 우리의 빈출한 상상력으론 그들이 오른 바위의 내부로 건너갈 수 없기 때문이다.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의 가야산 절벽에 새겨진 불상은 현재 국보 제84호다. 백제의 불상이 머금고 있는 미소는 무어라 설명하기 곤란한 평온과 온유가 있다. 석공은 바위에 매달려 정과 망치로 미소를 빚었다. 불상의 조형성 중 가장 중요하게 꼽는 것이 부처의 손 모양과 입술이라는 사실에 공감이 간다. 호기가 좀 더 있는 사람들은 암벽으로 기어 올라가 마애불의 손바닥에 매달려 잠시 쉬었다가 간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바위에 매달린 석공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건 부처의 손바닥을 완성하고 그 위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 석공의 날숨에 대한 상상이었다. 손바닥 위에 앉아 발끝을 자신이 마친 손바닥 끝에 걸쳐두고 그는 땀을 닦아냈을 것이다. 처음 마애불의 조형을 제안받고 그가 떠올린 불상의 미소 같은 것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는 캄캄한 절벽의 바위에서 밤낮으로 매달린 채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미소 하나를 발견하기 위해 오랜 시간 고민했을 것이다. 그건 장인정신을 넘어서는 불굴의 정신이다. 허약한 예술은 대중에게 쉽게 감정을 드러내며 순종을 요구한다. 하지만 불가능에 가까운 섬세함을 겨냥하는 예술가들은 대중에게 순종이나 설득보다는 대상과의 합일을 요구한다. 대상과 참여하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장인적인 예술가의 고집이고 석공이 노리는 미소였을 것이다. 바위와 미소는 어울리지 않지만 바위 속에 존재하는 미소는 더없이 아름답고 숭고하며, 미소를 품고 존재하는 바위는 더 이상 캄캄한 돌덩이가 아니다. 마애불상의 미소는 사람들에게 한없이 자애로운 평온을 준다. 그 미소가 건너가고 있는 세상은 오고 있는 것일까?

개심사는 충남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상왕산 터에 있는 절이다. 사적기에 따르면 의자왕 651년 혜감국사가 창건했고 개원사(開元寺)라 하던 것을 후에 처능(處能)이 다시 개심사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절 내부는 그윽하면서도 은밀하다. 절이 갖는 공간은 한 터에서 온기와 냉기가 구석구석 기묘하도록 조화롭다.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 중 으뜸은 마당의 온기와 경당 내부의 냉기가 이상하게 조화를 이루는 정서다. 이 절이 갖는 건조한 고졸과 은근함이 얼마나 주변의 풍경을 더욱 새롭게 하고 멋스럽게 하는지를, 누구라도 몰래 와서 돌맹이처럼 잠시 앉아 있다 가더라도 좋은 절, 그늘이 한 장 한 장 내려앉는 풍경, 숲의 소리, 바람, 그리고 물고기의 모습을 갖고 태어난 풍경의 희미한 떨림과 울림.

하루의 구름이 모두 젖기 위해 이 곳으로 온다는 누군가의 시를 보다가 무릎을 친 적이 있는, 쓸쓸한 구름의 뒤편이 궁금해지는 시간, 개심사에 오면 사람이 길을 왜 버리기도 하는지, 왜 길이 사람의 편에서 항상 가장 늦은 시간까지 제 속을 환하게 울렁이고 기다리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시야를 잃고 시선을 찾는 절. 개심사는 사람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태어난 절이라기 보다는 사람의 내면에 있는 어떤 무렵을 내려놓고 가기 좋은 절이다.

개심사의 풍경소리를 듣고 멀리 떠내려가지 못하는 구름도 있다. 개심사의 밤에 찾아오는 숲의 그늘은 엎드려 잠든 짐승들의 순한 귀를 따뜻하게 적신다. 새벽마다 개심사의 내부에서 가장 애연하게 목탁의 멍울을 타고 흘러나오는 것은 인간의 독경이 아니다. 어린 동자승의 큰 눈망울이 산수유열매보다 붉어지고 있다. 공명통이 열리는 주변의 풍경을 보기 위해 개심사엔 저녁에 가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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