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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산다는 것의 의미를 상기시키는 질병, 감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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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산다는 것의 의미를 상기시키는 질병, 감염병

입력
2014.06.20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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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과 인문학

정과리ㆍ이일학 등 지음

강 발행ㆍ271쪽ㆍ1만5,000원

“죽음이 가까운 사람이 어찌 영옥의 생활까지 침범하려는 대담한 마음을 갖겠습니까.”

나도향의 소설 ‘피 묻은 편지 몇 쪽’에 나오는 주인공의 고백이다. 소설 속 주인공이 사랑을 접은 것은 결핵 때문이었다. 이는 작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도향 역시 결핵환자였기에, 부치지 못한 편지로만 짝사랑의 마음을 간직해야 했다. 도쿄에 나와 있던 동아일보 여기자를 사모했던 나도향의 얘기를 지인들은 이렇게 전한다.

이상도 결핵을 친구로 삼았다. 그는 다만 사랑함으로써 병을 잊었다. “지어 가지고 온 약은 집어치우고…금홍이를 사랑하는 데만 골몰했다…사랑의 힘으로 각혈이 다 멈췄으니까.”(소설 ‘봉별기’)

과거 불치병의 대명사였던 결핵은 ‘글쟁이들의 직업병’으로 통했다. 나도향, 이상, 김유정, 현진건, 이광수, 박용철, 채만식 등이 결핵으로 스러졌다. 서양에서는 도스토옙스키, 샬롯 브론테, 에밀리 브론테, 체호프, 카프카가 그랬다.

때로 문학에서 질병은 ‘응징’의 도구로 쓰였다. 결핵이 그랬듯 대부분의 감염병에 약이 없었던 탓이다. 그래서 감염은 곧 죽음이었다. 이광수의 ‘재생’에 등장하는 신여성 김순영은 연인 신봉구가 3ㆍ1운동으로 수감 생활을 하는 동안 부호의 아들과 허락되지 않은 욕망에 빠진다. 그러나 그는 ‘타락의 죄’로 성병이라는 벌을 받는다.

의학이 발달하면서 감염병은 더 이상 죽음의 동의어가 아니다. 오히려 감염병을 둘러싼 세인의 무지를 바로잡는 소재로 활용된다. 드라마 ‘고맙습니다’는 HIV 보균자인 일곱 살짜리 천사 이봄(서신애 분)이 맞닥뜨린 세상을 통해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꾸짖는다.

‘감염병과 인문학’은 감염병이 지닌 인문학적인 의미를 모은 책이다. 정과리 연세대 국문과 교수, 서홍관 국립암센터 국가암관리사업본부장, 이동신 서울대 영문과 교수 등 의학자, 인문학자, 사회운동가 13명이 참여했다. 감염병의 철학적 의미와 역사, 감염병이 소재가 된 작품과 대중문화 등을 아우른다.

이들은 감염병에 주목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감염병은 산다는 것의 의미와, 더불어 산다는 것의 의미를 동시에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인문학적 성찰의 재료가 될 성분을 대폭 함유하고 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한 걸릴 수 밖에 없는 질병이면서도, 감염되는 순간부터 ‘격리의 공포’를 감수할 수 밖에 없는 모순도 지녔다. 그 아이러니에 대해 책은 이렇게 조언한다. “결국 인류가 유일하게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인간 존재의 공통조건 때문이다.”(소영현 연세대 국학연구원 HK 연구교수)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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