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맥길대 데노브 교수, 시에라리온 반군서 활동했던 소년병 76명 심층 인터뷰
살인기계 되는 과정 등 당사자들의 입을 통해 연출 없이 적나라하게 기록
“사람을 쏠 때는 허리 위로 쏴야 해요. 그러면 확실하게 죽일 수 있으니까요.”
신문과 잡지에 실리는 소년병들의 사진이 당신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가. 두려움과 적대감이 교차하는 눈동자, 바싹 마른 팔다리, 손에 꽉 쥔 공격용 소총, 아무 감정 없이(때론 자랑스럽게) 살인 방법을 설명하는 입술. 아마도 당신은 분노와 연민의 감정에 사로잡혀 이 사진이 연출됐을 가능성을 미처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전세계 무력 충돌의 현장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소년병들의 이미지는 한 장의 사진으로 고정돼 정치?경제 심지어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동력으로 활용되고 있다. 고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의 부인 마셸 그라샤는 “구호사업과 구호단체를 선전하거나 심지어 정치 쟁점으로 만들기 위해 전직 소년병들은 총을 들고 포즈를 취하라는 요구를 받았으며…인도주의 단체들은 ‘더 비극적인’ 사연을 가진 아동을 뽑아달라는…영화 제작자와 언론인의 요청을 승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주장했다. 한 연구자는 서구가 제3세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동의 이미지를 이용하는 것을 “재난 포르노”라고 불렀다. 이들을 향해 무작위로 쏟아지는 얄팍한 연민이 “수혜자를 타자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총을 든 아이들, 소년병’은 언론과 대중이 그려내는 소년병의 타자화한 이미지를 거부하고 이들의 다면적이고 모순된 내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한다. 캐나다 맥길대 교수 미리엄 데노브가 시에라리온의 반군조직인 혁명연합전선(RUF)에서 활동했던 어린이 76명(소년 36명, 소녀 40명)을 대상으로 약 2년간 심층 면접과 소집단 토론을 실시했다. 책의 특징은 소년병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군사화 및 정체성 변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또 사회 복귀 과정은 어떠한지에 대해, 어른이 아닌 소년병 당사자의 입을 빌어 서술한다는 것이다. 이는 소년병을 둘러싼 연구와 담론에 정작 당사자의 시각이 빠져 있는 현실(아동의 시각은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에 대항하기 위한 것으로, 책의 내용은 어른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소년병 연구서가 아닌 아동의 고백과 그를 통한 치유 과정을 기록한 보고서에 가깝다.
면접 참가자들의 육성으로 듣는 전쟁의 참상은 익히 알려진 대로 끔찍하다. 한 명도 빠짐 없이 납치를 계기로 소년병이 된 이들은 RUF만의 방법_마약과 군사 훈련, 이념 교육, 가족 살해 등을 통해 유능한 살인기계로 키워진다. “우리의 유일한 존재 이유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었어요. 만날 죽이는 생각만 했어요.” “문 앞에 시체가 누워 있어도 아무렇지 않게 뛰어넘어 방에 들어갔어요.”
그러나 이들이 순진한 어린이에서 살인마로 바뀌는 과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도식적이지 않다. 아이들은 끔찍한 폭력 속에서 고민하고 저항하며 때론 이를 이용하고 전복시키려 한다. 한 소년은 전투 직전에 주어지는 마약을 몰래 버렸고 어떤 소녀는 자신을 강간한 남성을 칼로 찔러 죽였다. 사적인 대화가 엄격히 금지되는 분위기 속에서 그들은 지휘관의 눈을 피해 연대하고 정서적 안정을 꾀하기도 했다. “숲에서 애를 낳았어요…남자들은 멀찍이 내뺐어요…언니들이 저를 도왔어요. 언니들은 뭘 해야 할지 알았어요.”
RUF는 아이들의 정체성에 “대규모 공격”을 가했지만 그에 영향을 받은 정도는 천차만별이었다. “어려운 상황이니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어요…언제나 본 모습을 숨기고 살았죠.” “전투 중에 총을 아무렇게나 쐈어요. 아무것도 겨냥하지 않았죠. 사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정체성 확립을 유보했던 아이들은 전쟁이 끝나고 사회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전시 못지 않은 고통을 받는다. 끈끈한 유대감이 일시에 단절되고 지휘관에서 한낱 어린애로 전락한 이들은 RUF 출신임이 밝혀질 경우 온갖 차별과 따돌림에 시달려야 한다. 가장 괴로운 것은 과거의 정체성을 미처 버리지 못한 자신이다. “제가 아는 것이라고는 RUF에서 배운 것뿐이에요. 제가 아는 부모님은 대장님과 (저를 납치한) 사모님뿐이에요.” 이들의 혼란스러운 고백은 아직 비극이 끝나지 않았음을, 그리고 참상의 그늘 안에 머물러 있는 소년병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지를 시사한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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