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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노담화, 한일간 문안 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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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노담화, 한일간 문안 조정했다"

입력
2014.06.20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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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 검증 결과 발표를 하루 앞둔 19일 벳쇼 고로 주한 일본대사(가운데)가 평통사 주최로 대사관 앞에서 열린 아베 정권 규탄 기자회견 때 정문 대신 민원인 출입문을 통해 이동하고 있다. 이날 평통사 회원들은 항의서한을 전달하려다 이를 막는 경찰과 충돌, 항의표시로 대사관을 향해 계란과 고무신 등을 던졌다. 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 검증 결과 발표를 하루 앞둔 19일 벳쇼 고로 주한 일본대사(가운데)가 평통사 주최로 대사관 앞에서 열린 아베 정권 규탄 기자회견 때 정문 대신 민원인 출입문을 통해 이동하고 있다. 이날 평통사 회원들은 항의서한을 전달하려다 이를 막는 경찰과 충돌, 항의표시로 대사관을 향해 계란과 고무신 등을 던졌다. 연합뉴스

일본 정부는 20일 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河野) 담화 작성 과정에서 당시 한일 정부간 문구 조정이 있었다고 지지통신이 보도했다. 하지만 문구 조정에서 일본은 위안부 강제연행 사실을 확인할 수 없다는 인식에 기반해 한국 정부의 요청을 수용하거나 거부해 사실상 담화 내용을 주체적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지통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이날 중의원 예산위원회 이사회에 보고한 고노담화 검증 결과 보고서에서 이 같은 내용을 명시했다. 양국 정부는 또 문안 조정 사실을 공표하지 않기로 했다는 내용도 보고서에 포함됐다.

하지만 보고서에서는 일본측이 “이른바 ‘강제연행’은 확인할 수 없다는 인식 아래 그때까지 실시된 조사에 기초해 사실 관계를 왜곡하지 않는 범위에서 한국 정부의 의향ㆍ요청에 대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받아들이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거부한다는 자세”로 임해 문구를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또 과거 위안부 여성에 대한 청취 조사에서는 사후에 이를 입증할 별도 조사를 실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에서 “고노 담화를 수정하지 않는다는 일본 정부의 방침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스가 장관은 이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역사 연구와 평가는 “전문가들의 손에 맡기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고노담화 검증 보고서의 개요를 한국 측에 설명했다고 밝혔다.

고노 담화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조사 결과에 따라 1993년 8월 4일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당시 관방장관이 발표한 것으로, 군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권이 고노(河野) 담화의 본격 검증에 나선 것은 두 달 남짓이다. 야마다 히로시(山田宏) 일본유신회 의원은 4월 초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고노 담화 작성에 관여한 이시하라 노부오(石原信雄) 전 관방 부장관을 불러 “문안 작성과정에서 한국 측의 요망이 있었다”는 답변을 얻어냈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 회원들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한반도 재침략 노리는 일본 아베정권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의 강제성을 처음으로 인정했던 고노 담화를 부정하고 집단 자위권 행사를 추진하는 아베 정부를 규탄한다"고 주장했다. 뉴시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 회원들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한반도 재침략 노리는 일본 아베정권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의 강제성을 처음으로 인정했던 고노 담화를 부정하고 집단 자위권 행사를 추진하는 아베 정부를 규탄한다"고 주장했다. 뉴시스

이시하라 전 부장관은 “(조사과정을 보면) 전체적으로 강제성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고노 담화 작성 취지라고 주장했지만, 일본 보수 언론은 일부 내용만 추려 “한국과의 정치적 산물임이 드러났다”며 고노 담화 흔들기에 나섰다. 야마다 의원도 이를 토대로 고노담화 재검토를 집요하게 추궁했고,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검증팀을 꾸려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답했다.

일본 정부는 4월 하순 검증팀을 꾸려 담화 발표 당시 자료와 관계자의 청취 등을 중심으로 검증 작업을 진행했다. 검증팀 단장은 다다키 게이이치(但木敬一) 전 검찰총장이 맡았고, 국제법, 인권, 동아시아 현대사 전공 학자, 아시아여성기금 관계자 등이 참가했다. 5명중 3명은 여성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검증 결과 발표는 아베 신조 총리의 전형적인 꼼수 정치라는 분석이다. 아베 총리는 취임 직후부터 줄곧 고노 담화 수정 의욕을 보였지만, 한국은 물론 동맹국을 자처하는 미국에서도 반발이 강했다. 그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방일을 앞둔 3월에는 공개 석상에서 고노 담화를 계승하겠다는 다짐까지 했다.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 도로에 일본 정부의 집단자위권 행사 시도를 규탄하는 글귀가 칠해져 있다. 한편 일본정부는 이날 오후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담화 검증 작업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뉴시스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 도로에 일본 정부의 집단자위권 행사 시도를 규탄하는 글귀가 칠해져 있다. 한편 일본정부는 이날 오후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담화 검증 작업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뉴시스

아베 총리는 대신 같은 우익 성향의 일본유신회를 끌어들여 고노 담화 검증을 마지 못해 받아들이는 척 하며 담화 흠집내기를 지속하고 있다. 일본유신회는 지난해 5월 “전쟁 중 위안부는 필요했다”는 망언으로 정치적 수세에 몰린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이 이끄는 정당이다. 하시모토는 정치적 입지 만회를 위해 어떻게든 고노 담화의 정당성을 훼손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 미국은 물론 전세계 도시에서 위안부 소녀상이 세워지는 것도 우익 세력으로서는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일본유신회 소속 기초의원들이 최근 미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시를 방문해 위안부 소녀상 건립에 항의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아베 정부가 기존 정부의 입장을 뒤엎는 보고서를 발표함으로써 정치적 역풍을 맞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는 “일본 정부가 고노 담화 발표에 앞서 한국 정부와 논의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당연한 작업”이라며 “일본 정부가 이를 두고 마치 정치적 야합이 배경인 것처럼 주장했다가는 외교적 부담이 더욱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1993년 8월 4일 오후 일본 총리관저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 정부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당시 관방장관. 연합뉴스
1993년 8월 4일 오후 일본 총리관저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 정부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당시 관방장관. 연합뉴스

뉴스A/S☞ 고노담화란

고노 담화는 1993년 8월 4일 자민당 정권의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이 발표한 일본군 위안부 관련 담화다. 일본 전문가들의 위안부 자료 발굴과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의 첫 위안부 증언 이후 일본 내에서 위안부 소송이 제기되는 이 문제가 한일 현안으로 급부상했다.

일본 정부는 처음 위안부 동원은 업자들의 짓이지 군이나 정부가 간여하지 않았다고 둘러댔다. 그러다 1992년 1월 아사히신문이 방위청 자료를 발굴해 일본군의 위안부 간여 사실을 보도하자 일본 정부의 태도에 바뀌기 시작했다. 이틀 뒤 가토 고이치 관방장관이 “군의 간여를 부정할 수 없다”는 담화를 냈고 당시 한국을 방문한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는 노태우 대통령에게 공식으로 사죄까지 했다.☞고노담화 전문 보기

이후 일본 정부는 본격적인 위안부 동원 진상 조사를 시작했다. 위안부 할머니 16명을 포함한 관련자 100여명에 대한 청취 조사, 미국 국립문서보관서 자료 조사 등이 진행됐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고노 담화다.

고노 장관은 담화에서 “위안소는 당시 군 당국의 요청에 따라 마련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옛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으로 이에 관여했다”고 밝혔다. 위안부 모집도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맡았으나 그 경우에도 감언ㆍ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한 사례가 많았으며 더욱이 관헌 등이 직접 이에 가담한 적도 있었다”고 일본군과 정부 간여를 인정했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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