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하
윤고은 지음
창비 발행ㆍ312쪽ㆍ1만2,000원
참신한 상상력이 섬뜩한 현실인식과 잘 맞물려
자본의 시대에 밀려난 존재들의 애처로운 우화
윤고은(34)의 두 번째 소설집 ‘알로하’에는 별의별 직업이 다 등장한다. 2010년부터 4년간 써온 아홉 편의 이야기 속에서, 인물들은 일당을 받고 지하철에서 온 종일 책을 읽는 척하며 책 광고를 하거나, 술 취한 사람들의 주사를 받아주는 유료 전화의 상담원이다. 대형 쇼핑몰의 고객들로부터 ‘좋아요’ 스티커를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월리를 찾아라’의 월리가 되거나, 거쳐온 동네마다 땅값이 폭등했던 ‘작가적 안목’ 덕분에 지자체의 주문 하에 ‘문화산책도시 프로젝트’를 위한 장편소설을 쓰기도 한다. 자본이 점령한 시스템에 잠시, 그것도 기껏해야 한 발 정도만 들여놓을 수 있는 축출된 자들. 이 위태로운 잉여들은 그 한 발이나마 밀어 넣고자 존재를 건 사투를 하지만, 한낱 부품에 지나지 않는 그들에게는 언제나 예정된 운명처럼 실직이 들이닥친다. 노동이 특권이 된 시대, 잉여의 존재론을 설파하는 우화들이다.
섬뜩한 현실과 처절한 세계인식이 윤고은 소설의 뼈대를 이루지만, 상상력은 참신하고 문장은 발랄하다. 무엇보다도 허무맹랑으로 빠지기 쉬운 상상력의 개성이 현실과 탄탄하게 교합하는 것이 미덕이다. 단편 ‘P’를 보자. 기러기 아빠인 주인공은 P라는 도시의 타이어 공장에서 일하며 아들의 학비와 생활비를 보낼 때 외에는 아내와 연락조차 하지 않는다. 그는 회사에서 병원 측의 협찬이라며 거의 강제적으로 실시한 내시경 검사를 받았다가 해파리 캡슐 내시경이 몸 밖으로 배출되지 않는 불상사를 겪는다. 부당하다며 문제를 제기하지만 수백 명이 받은 검사에서 그 혼자만 캡슐을 배출하지 못했으므로 그건 그의 개인적 문제이자 책임이라는 답변이 돌아오고, 몸 속 캡슐이 점점 커짐에 따라 그는 결국 해고를 당하게 된다. 모든 것이 개인의 책임으로 귀결되는 한국 사회의 초상은 해파리를 배출하지 못한 게 그 혼자만이 아니었음이 드러나며 반전을 맞는다.
기사에 치명적인 오자를 연거푸 낸 후 해고당한 지역신문의 기자 ‘정’. 그는 자신이 “수족관 유리 안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봤기 때문에” 잘렸다고 생각한다. 지하철 책 광고 업체에 새로 취직해 단정한 용모로 2호선에 앉아 며칠째 ‘민달팽이의 집’을 읽고 있는 정은 웃기도 하고, 밑줄도 긋고, 책 제목이 잘 노출되도록 세워 읽기도 하지만 별 효과가 없다. 책이 전국적으로 ‘터지게’ 된 건 정이 양 손에 책을 꼭 쥐고 지하철 선로 위로 투신해 죽은 후. “선로 아래로 몸을 던진다기보다는 책 속으로 무게중심을 기울이다가 삶 자체가 기울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문장 위로 바스라져 버린 정은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행간이 되었다.”
‘신 노동문학’이라고 불러도 좋을, 어떤 일이든 해야만 하는 주인공들의 기가 막힌 노동의 장면들이 소설의 주요 장면을 차지하는 윤고은의 소설들에서는 심지어 개에게도 ‘근무시간’이 있다. 개를 빌려 산책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원하는 품종의 개를 대여해 함께 산책할 수 있게 해주는 ‘오늘의 개’ 라는 신종사업이 등장한 것. ‘좋아요’ 스티커 100장을 모아야 정규직으로 채용될 수 있는 월리들의 피 튀기는 다툼은 청년들의 눈에 비친 이 시대의 ‘결정적 장면’이라 해도 좋다. 광대 같은 분장을 한 월리들이 호화로운 거대 쇼핑몰을 배경으로 아귀다툼을 하는 모습은 우스꽝스러워서 더욱 기괴하다.
표제작 ‘알로하’는 겨울철 동사 예방이라는 미명 아래 하와이로 ‘집단 배출’된 미국 노숙인들의 이야기를 그린 쓸쓸한 작품이다. 1989년 뉴욕에서 하와이로 건너왔다는 한국계 노숙자 ‘윤’은 지역신문 ‘넥스트 호놀룰루’의 부고 담당 기자인 ‘나’에게 자신의 부고를 써달라고 부탁한다. 과장이거나 결락이기 쉬운 부고의 형식 안에서 글쓰기에 회의를 느끼던 ‘나’는 본인이 직접 요약하는 삶의 이력에 호기심을 갖고 윤과 자주 만나지만, 그가 구술한 모든 일화들이 과거 신문의 기사들이었음을 알게 된다.
“당신의 이야기는 대부분 당신이 겪은 것이 아니라 읽은 것이었다. 당신이 읽은 이야기들은 모두 거리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신문지 위에 몇 줄로 남은 인생들을 당신은 덮고 자다가, 깔고 앉다가 읽게 되었고, 읽은 말들을 기억하게 되었다.”
그의 말들이 단지 거짓만은 아니었음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하와이 바다에서 파도를 타던 윤은 죽음 속으로 증발한다. 그는 서류상 이미 5년 전에 죽은 사람이므로, 그의 부고는 기사가 되지 못한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한 삶. 그러나 ‘나’와 윤 사이에는 이야기가 있었으므로, 그는 결코 없었던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것이 이야기가 인간을 애도하는 방식이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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