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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1000조x10)' 셀 일 갈수록 늘어나지만 화폐 개혁엔 신중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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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1000조x10)' 셀 일 갈수록 늘어나지만 화폐 개혁엔 신중론

입력
2014.06.20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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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30,000,000,000,000원.’

2012년 말 현재 우리나라 국민순자산(국부)이다. 한참을 헤아리다 ‘1만630조원’이라고 읽는 사람도 있겠지만 정답은 1경(京)630조원이다.

0이 무려 16개나 달려 아라비아 숫자로 적어놓으면 한눈에 알아보기 힘든 단위, 어지간해선 실생활에서 쓰이지 않아 생소한 용어가 우리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화폐단위가 대개 우리나라의 100분의 1, 1,000분의 1 수준인 선진국에선 화폐단위 ‘경’은 사전에나 있는 말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화폐액면 단위를 변경하는 리디노미네이션이다. 예컨대 100원은 1원으로, 또는 1,000원은 1원으로 바꾸는 식이다. 리디노미네이션은 5만원의 탄생과 맞닿아 있다. 5만원이 만들어질 무렵 고액권을 만드느냐, 리디노미네이션을 하느냐는 논란 끝에 고액권 발행으로 결정났다. 만약 리디노미네이션이 이뤄졌다면 5만원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나마 당시만 해도 경 단위는 파생상품 거래 같은 가상의 통계 수치로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10년 말 국내 총 금융자산이 1경원을 돌파(1경297조7,000억원)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갈수록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실물경제 지표에 경이 자주 등장하자 리디노미네이션의 필요성이 다시 떠오른 것이다. 올 4월에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마저 “내부 검토는 다 돼 있다”며 리디노미네이션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다만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 총재의 말은 리디노미네이션 논의가 처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있는 게 분명한 만큼 누구도 먼저 나서 책임을 지고 싶지 않은 사안인 것이다. 지금까지 수 차례 리디노미네이션 추진이 좌절된 것도 이 때문이다.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하면 화폐 재발행, 시스템 변경, 현금인출기 및 자판기 교체 등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다, 여기에 국민 불안심리까지 더해지고 물가 상승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정부로선 쉽지 않은 선택이다.

리디노미네이션은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으로도 거론된다. 구권을 신권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탈루된 현금 소득을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으로는 거론하기에 리디노미네이션은 지나치게 강력한 대책”이라며 “거래 편익은 늘지만, 낮은 화폐단위가 사라지면서 자연스러운 상품값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등 경제적 부담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리디노미네이션의 또 다른 장점으로 얘기되는 우리나라 돈의 대외적 위상 제고는 어떨까. 1달러당 1,000원이 넘는 것이 마치 우리나라 화폐 가치가 매우 낮은 것처럼 비춰지는 게 사실이기 때문.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화폐 단위의 하향 조정이 아닌 원화 국제화를 비롯한 금융 국제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못박았다.

이렇다 보니 “필요성은 인식하지만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는 게 중론일 수밖에 없다. 5만원이 고액권의 지위를 누리는 상황이 상당 기간 지속될 공산이 커 보인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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