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정치권과 여론의 자진사퇴 압력을 정면으로 거스르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19일 퇴근길에는 20여분간 자신이 쓴 칼럼을 읽어가며 식민사관 논란을 반박하는 등 정면 돌파 의지를 분명히 했다.
문 후보자는 이날 오후6시 퇴근길에 서울 창성동 정부서울청사 별관 1층 로비에 진을 친 취재진 앞에 서서 2009년 중앙일보에 게재한 ‘코레아 우라(러시아어로 대한만세)’라는 칼럼을 읽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이토 히로부미 저격 100년이 된 올해…저희는 당신의 시신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병사 시신을 찾기 위해 애쓰는 국가를 생각하면 부끄럽습니다”는 등의 주요 대목을 발췌해 들려주면서 “대학생들에게 대한민국 정체성을 제대로 알렸다. 사실을 바탕으로 보도해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그는 이어 “우리 현대 인물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 안중근 의사님과 안창호 선생님”이라며 “저는 나라를 사랑하셨던 분, 그 분을 가슴이 시려오도록 닮고 싶다”고 자신을 향한 식민사관 논란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러면서 “이런 분들을 제가 정말로 존경하는데 왜 저보고 친일이다, 왜 저보고 반민족적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지 정말로 가슴이 아프다”고 강조했다.
문 후보자가 로비에 선 채 20여분간 해명과 호소를 이어간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자신의 억울함을 강조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새누리당 관계자도 “문 후보가 자진해서 총리를 시켜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가만 있는 사람 불러다가 하루 아침에 역적으로 만들어놓았다며 상당히 억울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문 후보자가 ‘버티기 모드’로 일관하는 데는 억울한 심경뿐 아니라 특유의 강한 자존심도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이 같은 모습은 안대희 전 총리 후보자가 전관예우 논란이 불거지자 내정 6일만에 전격 사퇴한 것과는 극히 대조적이다. 안 전 후보자는 청와대와 여당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여론이 악화하자마자 후보직을 던진 반면, 문 후보자는 여권마저 등을 돌린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꿋꿋이 버티고 있다. 명예를 중시하고 상명하복의 조직 문화에 익숙한 검찰 출신과 달리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언론인 출신 특유의 오기와 근성이 작용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