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는 덜 알려졌지만 스웨덴 재난관리체제는 유럽 등지에서 널리 정평을 얻고 있다.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어 마침 모국에 교환교수로 와 있던 최연혁 스웨덴 쇠데르턴대 교수를 만났다가 세월호 침몰 참사의 핵심적 후속조치인 국가안전처 설립안에 대한 깊은 우려를 들었다.
예측불가능하고 복합적으로 진화하는 오늘날 재난의 특성을 고려할 때 국가가 나서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참사 발생 보름도 안돼 대통령이 일도양단식 대책을 내놓고 충분한 검토도 없이 실행하려 드는 지금의 방식으론 안된다는 요지였다. “재난관리 정책은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며 수립해야 한다. 요행을 바랄 수 없는 노릇이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정부는 실수해선 안 된다. 이렇게 급하게 국가 틀을 뜯어고쳐 놓고 예상 못한 재난이 생기면 또 개조하겠다는 거냐.”
점잖고 온화한 최 교수가 조금 흥분할 만도 한 것이, 그가 현지 정치제도를 연구하며 20년 넘게 살고 있는 스웨덴에선 우리의 국가안전처에 해당하는 재난관리청(MSB)이 무려 4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출범했다. 보름이 아니라 4년 말이다.
그것은 그 나라 특유의 주요정책 수립 방식인 특별위원회제와 관련 있다. 해당 분야 최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특별위원회는 독립적 조사권 및 최소 2년의 조사기간을 보장받고 학술세미나, 국내외 사례 조사, 각계각층 의견 수렴 등을 꼼꼼히 진행한 뒤 현지 약어로 SOU로 불리는 국가특별보고서를 제출한다.
여기서부터 또 2년이다. 정부는 SOU를 바탕으로 이해당사자들의 이견을 조정해가며 최상의 정책조합을 찾아내 법안을 성안한다. 시간은 들지만 사회통합력과 정치ㆍ경제적 효율성을 담보한 정책이 마련되는 것이다. MSB는 물론이고 헌법 개정, 선거제도 개혁, 연금 개혁 등 스웨덴 현대사에 굵직한 획을 그은 개혁들을 그렇게 이뤄졌다. 국가 개조라는 걸 해야 한다면 응당 이래야 하지 않을까. 정부라는 거대 조직은 특별위원회든 뭐든 일단 제도화되면 관성적으로 굴러가게 마련이라고 짐짓 뻗대본다 해도 정책 하나 만들라고 4~5년을 기다려주는 그 나라 국민 앞에선 할 말을 잃게 된다.
MSB 설립 과정을 들여다보면 더욱 그렇다. 비효율적으로 분산된 국가 재난관리기구들을 MSB로 통합하게 된 계기는 2004년 동남아 쓰나미 사태로 드러난 정부의 무능력이었다. 최 교수에게도 확인했지만, 가히 스웨덴판 ‘세월호 참사’라고 부를 만한 상황이었다. 태국 등지에서 겨울휴가를 보내던 자국민 543명이 불귀의 객이 됐지만 현지 스웨덴 영사관은 사망자 명단 파악도 못했다. 본국 외교부에 긴급 보고전화가 걸려왔을 때 성탄절 휴가로 텅빈 청사에는 당직자 한 명뿐이었다. 그가 직속상관인 외교장관에게, 장관이 정부 수반인 총리에게 사태를 보고하고 긴급 내각회의가 소집됐을 땐 참사 발생 36시간이 지난 뒤였다. 참담한 대응능력과 기강해이의 책임은 당직자 혼자 뒤집어썼고, 총리 측근이었다가 하루 아침에 파면된 그는 폭로성 회고록으로 보복했다. 아수라장이 된 집권 사회민주당은 결국 두 차례 총선에서 연거푸 패배했다.
스웨덴인들은 분노했다. 그러나 기다려줬다. 경이로운 ‘공적 인내심’ 속에 정부는 4년의 시간을 들여 재난 컨트롤타워를 설립했고 그 해 전세계를 강타한 신종플루(H1N1) 유행 사태에서 국민들을 훌륭히 지켜냈다. 제대로 만들려면 시간이 든다는 것을 아는 지혜와 인내는 그렇게 보상받았다.
어느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가다가 에스컬레이터 출입구에 세워진 공사 안내 입간판을 봤다. ‘조금 늦더라도 제대로 고치겠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그리고 스웨덴 사람들이 떠올랐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