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형국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지난 화요일 서울 모처에서 보건복지부 주최로 나눔기본법 제정안에 대한 전문가 간담회가 열렸다. 나눔기본법안은 국격에 맞는 성숙된 나눔문화가 정착되도록 하기 위해 목적별ㆍ대상별ㆍ부처별로 각각 분산 규정된 나눔 관련 법률을 총괄·조정하는 나눔문화위원회를 설치하고, 나눔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한 국가의 관심과 의지를 담아 나눔문화재단이라는 지원 조직을 만드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 2012년 3월부터 총리실 산하 나눔활성화 정책협의회를 통해 범정부 차원에서 나눔기본법 제정을 추진하기로 결정하고, 연구용역을 통해 나눔기본법 초안을 마련해 지난 2013년 11월 문정림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복지부 담당자는 나눔 관련 법률을 총괄·조정하는 위원회 설치의 필요성과 나눔기본법 추진에 대한 관계부처 간에 합의가 이뤄졌음을 누차 강조했다. 그러나 함께 참석한 안전행정부 담당자는 기존 나눔 관련 8개 부처 소관 18개 법률과의 체계적합성이 부족하고, 기부 자원봉사 헌혈 장기기증 등의 다양한 기부형태를 ‘나눔’이라는 용어로 통일시키는 것이 부적절하며, 기존의 자원봉사활동기본법상의 기본계획 및 위원회와 중복되는 등의 내용을 수용하지 않았음을 밝혔다. 정부 부처 간에도 이 법 제정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복지부는 지난 2012년 이 법에 관한 입법예고를 했고, 자원봉사단체 및 시민사회단체와의 간담회를 한 차례씩 열었다. 당시 자원봉사단체들은 법안 마련 과정에서 자원봉사계의 의견수렴이 되지 않았고, 이 법이 자원봉사의 다양한 영역을 사회복지 및 보건 영역으로 축소시키며, 나눔의 모집ㆍ배분에 관한 장부를 작성해 보고하도록 함으로써 국민들의 참여를 제한시킬 우려가 크다는 등의 이유로 반대했다. 시민사회단체들도 시민사회의 폭넓은 논의와 합의 없이 정부 주도로 진행하는 법제정은 위험하고, 기존 나눔 관련법의 문제에 대한 대책이 없으며, 기존법과의 관리중복에 대한 해결기준이나 조정방안이 제시되지 않았고, ‘나눔문화재단’을 통한 정부 주도의 사업으로 인한 폐해와 예산낭비의 우려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역시 반대했다.
이날 많은 간담회 참석자들은 이 법의 입법예고 이후 국무회의 의결이 됐다는 소식이 없어 더 이상 나눔기본법안을 추진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복지부의 나눔기본법 제정안이 문정림 의원 발의로 국회에 상정됐다는 사실을 간담회 일정(협의가 아닌) 통보를 받으며 알게 됐다고 했다. 안행부 담당자는 간담회 내내 비협조적이었으며, 복지부 담당자는 계속되는 반대의견으로 내내 좌불안석이었다. 간담회에서는 관계부처 간 협의도 거치지 않고 의원 입법으로 발의하면서까지 나눔기본법을 제정하려는 필요성(‘꼼수’라고 표현됨)이 무엇인지, 복지부에서 기부 자원봉사 헌혈 장기기증 등 나눔 전반에 관해 관리할 리더십이 있는지, 이 법이 민간의 기부문화를 규제하기 위한 것인지 지원하기 위한 것인지, 기존 기부관련법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등에 관해 끝없이 의문이 제기됐으나, 복지부 담당자의 적절한 대답은 없었다.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나눔의 특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적극 장려해 촉진될 수 있도록 국가가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는 근거와 철학을 국민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고작이었다.
나눔기본법의 제정을 반대할 이는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의 일개 부처가 일방적으로 의견수렴 없이 밀어붙이기로 법을 제정하는 방식으로는 그런 법 제정취지를 살리는 일은 요원할 뿐이다.
정부가 국민을 미개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눔문화도 정부가 주도해 사회공학적으로 만들겠다는 것 아니냐는 한 참석자의 말이 인상에 남는다. 정부가 주도해 국가를 개조하겠다는 발상이 세월호 참사를 낳게 한 것이 아닐지, 국민은 어차피 미개하니까 일본 극우언론의 지지를 받는 사람을 총리로 앉혀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계속 머리를 맴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