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복
경인교대 명예교수
최근 정치와 사회 분야의 여러 대형 이슈에 가려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국가 교육과정 개정은 중차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교육과정은 학생이 앞으로 어떤 인간이 돼야 하는가에 대한 기대, 그런 인간으로 육성하는데 필요한 내용과 방법을 규정하는 교육의 설계도이기 때문이다. 교과서가 개발되고 학교 수업이 이뤄지는 것도 모두 이 설계를 토대로 한다. 자연히 각 교과의 교육과정은 학교 교육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2015년에 발표될 문ㆍ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은 어떻게 개정돼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핵심역량을 중심으로 학교교육이 쉽고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각 교과의 교육과정과 교과서부터 쉽고 재미있게 구성돼야 한다.
교육내용 구성에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효능성의 문제가 제기된다. 하나는 적합성의 측면이다. 이것은 교육의 대상인 학생에게 타당하며 학생의 성장을 발전적으로 촉진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다른 하나는 실천가능성의 측면이다. 이것은 실제 학생들이 쉽게 이해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으며 내면화가 가능한가의 문제다. 그러면 적합성과 실천가능성을 충족시킬 수 있는 교육과정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가?
첫째, 교육내용의 적합성 측면에서 많이 논의되고 있는 것이 핵심역량과 기본원리다. 핵심역량은 미래사회의 삶과 직업에서 성공하기 위해 학습자에게 요구되는 필수적인 능력이다. 예를 들면 의사소통 능력, 시민의식, 창의적 사고력, 문제해결 능력, 정보처리 능력 같은 것들이다. 기본원리는 자연적ㆍ사회적 현상을 이해하는데 기본 바탕이 되는 보편적 개념이나 법칙을 말한다. 예를 들면 연산의 법칙, 민주주의 원리, 관성의 법칙 등과 같은 것들이다. 국어ㆍ영어 교과에서는 핵심역량이, 수학ㆍ과학 과목에서는 기본원리가 더 강조될 수 있다.
이제까지 우리의 교육과정이나 교과서에서는 너무 많은 사실적 지식이나 단편적인 개념들이 나열되는 경향이 강했다. 이로 인해 학습해야 할 내용이 터무니없이 늘어나 학생들이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것을 외워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학습방법으로 인해 지식이 단순기억에 편중돼 향후 사회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핵심 역량으로 또는 보편적 원리로서 내면화하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
이제부터라도 교과의 내용 선정은 핵심역량으로 작용하는 것들, 그리고 보편적 원리로 이해될 수 있는 것들로 최소화시켜 선정하되 그것들이 탐구의 과정이나 체험적 활동을 통해 학습될 수 있도록 하는데 방점을 둬야 한다. 그럼으로써 내용이 쉽게 이해되고 실제에 적용해가며 배우는 재미가 동반되는 유의미한 학습이 가능해진다.
둘째, 실천가능성의 측면에서 고려해야 할 부분은 교육내용의 양과 수준의 적정화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교육과정을 개정할 때마다 강조돼 왔던 사항이기도 하다. 특정 교과를 전공한 사람들은 가급적 자기 교과의 내용을 많이 가르치고 싶어한다. 그러다 보니 교육과정이나 교과서에 많은 지식을, 그것도 위계성이 결여된 채로 나열하게 됐다. 자연히 학생들은 배우기 힘들고 어려워할 수밖에 없다. 이번 교육과정 개정 과정에서는 이런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교육내용의 제시방식에서도 가급적 단편내용을 단일한 방법이 아닌, 여러 상황 속에서 통합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내용의 이해와 적용 범위를 넓히는데 도움이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거나 사상(事象)을 탐구할 때 한 측면에서의 접근이 아니라 여러 측면과 상황을 연결시켜 통합적으로 접근할 때 재미는 물론 사고의 폭이 넓고 깊어진다.
거듭 강조하건대, 우리의 학교교육은 쉽고 재미있어야 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즐거워하는 학교생활은 물론 그들의 성장이 더욱 밝고 활기차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과 교육과정의 연구ㆍ개발ㆍ검토ㆍ심의에 참여하는 인사들은 교육내용의 적합성과 실천가능성에 대해 깊이 숙고해주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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