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크게 늘며 공정성 절실 무형재산까지 대상 삼아야... 美·英도 인정 추세" 주장에 "국민연금 외 규정 없어 퇴직금은 부부 일방의 재산 배우자에 권리 없어" 반박
교사인 아내의 미래 퇴직금은 1억원, 연구원인 남편의 퇴직금은 4,000만원. 14년간 결혼생활을 끝내고 2010년부터 이혼소송 중인 이들 부부에게 장래 퇴직금은 과연 공평하게 배분해야 할 재산분할 대상일까.
19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심판정에서 장래 퇴직금이 이혼시 재산분할 대상인가를 다투는 공개변론이 벌어졌다. 1995년 형성된 현재의 판례는 미래 퇴직금은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인데, 대법원은 이를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판례가 바뀔 가능성을 열어뒀다. 노령화 시대에 따라 재산분할 문제도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대법원은 판례를 변경하지 않을 때는 대법관 4인 소부에서 판결하지만, 의견이 갈리거나 판례를 변경하려면 전원합의체를 거치도록 돼 있다.
공개변론은 치열하게 전개됐다. 부인(이혼소송 원고)의 미래 퇴직금 분할을 요구하는 남편(피고) 측 법률대리인인 양정숙 변호사(법무법인 서울중앙)는 “최근 이혼율이 급증하면서 공정한 재산분할 요구가 급증하고 있어 무형재산까지 적극적 재산분할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며 “대부분의 가정이 소득을 생활비와 자녀양육비로 쓰기 때문에 퇴직금이 이혼시 재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높다”고 주장했다.
남편 측 참고인인 현소혜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부부 사이에 평등한 노후보장이 필요한데 (미래 퇴직금이 분할되지 않으면) 이혼의 자유를 보장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퇴직급여를 받는 배우자가) 근무를 하는 시간 동안 다른 배우자는 가사노동, 양육 등 각종행위를 통해 노무를 보충하기 때문에 이혼 시점에 나누는 것이 정당하다”며 “부부 중 한편이 혼인기간 중 상대방에 협력, 기여한 것을 인정받는 한도 내에서 분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 교수는 또 독일, 영국, 미국 등에서도 장래의 퇴직금을 재산분할 대상으로 삼는 것이 추세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부인 측 법률대리인인 임채웅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는 “국민연금은 연금법 상 분할규정이 있지만, 퇴직연금 등 여타 연금법에는 분할규정이 없어 (분할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법적 안정성을 해치게 된다”며 “입법에 의해야지 재량권이 넓은 재판에서 결정할 일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부인 측 참고인인 제철웅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퇴직금은 근로자 인격의 표현으로 볼 수 있는 임금에 해당하며 가장 특유한 재산의 하나”라며 “부부 일방의 재산인 퇴직금은 배우자에게 아무 권리가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법관들도 질문을 쏟아냈다. 민일영 대법관은 “근로자가 아직 퇴직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용자에게 퇴직금 청구를 할 수 없는데, 본인의 지위에 준하는 이혼 배우자가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은 논리적인 모순이 아닌가”라며 “제3자인 회사 입장에서는 근로자의 이혼을 이유로 퇴직금을 부담하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합리적으로 설명하겠는가”라고 질문했다. 양 변호사는 “이혼 배우자의 근로자성은 근로관계가 끝나야 비로소 청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혼에 의해 밖으로 튀어나오게 되는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며 이혼으로 인해 권리가 표출된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이어 “퇴직금 중간정산제도가 2012년 법 개정에 의해 불가능해졌지만 전 배우자에 대한 퇴직 채권자의 정산의무가 변한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공개변론에서 제기된 각종 쟁점들을 정리해 연내에 이 사건의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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