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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이상적인가

입력
2014.06.19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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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온 체코 작가 밀로시 우르반. 이번에 국내 출간된 '일곱 성당 이야기'를 포함해 18권의 소설을 낸 그에게는 체코 문학에 고딕 느와르 장르를 부활시켰다는 평가가 따라다닌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한국에 온 체코 작가 밀로시 우르반. 이번에 국내 출간된 '일곱 성당 이야기'를 포함해 18권의 소설을 낸 그에게는 체코 문학에 고딕 느와르 장르를 부활시켰다는 평가가 따라다닌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체코 작가 밀로시 우르반의

고딕소설 ‘일곱 성당 이야기’

"내면의 갈등·시대의 충돌

살인 등장하는 소설 쓰게 해"

고딕 소설이 상업주의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폐허가 된 중세 건물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빌려 살인과 치정을 버무리는 이런 소설들은 문학의 순수한 의무를 저버리고 스스로를 오락거리로 전락시켰다는 비난의 화살을 받기 일쑤다. 1999년 체코 작가 밀로시 우르반이 발표한 ‘일곱 성당 이야기’는 고딕 소설의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지만 주객이 뒤바뀐 모습이다. 피로 흥건한 살인 사건과 희미한 로맨스가 존재하지만 이는 이야기의 표피일 뿐, 뚜껑을 열어보면 고딕 건축에 대한 맹신이라는 뜻밖의 내용물이 들어 있다. 소설에는 14세기에 지어진 고딕양식의 성당들이 미학적?윤리적으로 완벽하다고 믿으며 이를 훼손한 자들을 살인으로 응징하는 급진주의자, 그리고 그를 쫓으면서도 그의 사상에 빠져드는 형사가 등장한다. 작가는 ‘악마적인 전통 수호자’라는 캐릭터를 이용해 중세와 현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거치며 체코가 겪은 혼란과 갈등을 짚어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 과연 이상적인지를 묻는 데까지 나간다. 이 책은 나오자마자 체코에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으며 현재까지 10개 언어로 번역됐다. ‘일곱 성당 이야기’의 국내 출간 및 서울국제도서전 참가를 위해 한국을 찾은 작가를 19일 서울 서교동 체코문화원 인근에서 만났다.

_소설에 여러 대립이 등장한다. 14세기와 20세기가 부딪치고 군주제와 민주주의가 충돌한다. 이중 무엇이 당신으로 하여금 이 소설을 쓰게 만들었나.

“나는 내면의 갈등을 소설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책을 쓰기 전(약 15년 전) 내 안에는 어떤 부정적인 충동이 있었다. 내가 사는 사회 - 아름답지도, 흥미롭지도 않은 프라하에 대해 쓴소리를 하고 싶었다. 그건 프라하를 벗어나 이 시대를 향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만든 아름답지 않은 세상이 군주제나 전체주의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지 묻고 싶었다.”

_한국에서도 새 건물이 들어설 경우 전통과 현대의 대립이 첨예해진다. 책에 드러난 전통과 현대의 충돌이 프라하에선 어떻게 표출되고 있나.

“책이 발표됐을 당시는 공공건축에 대한 집단 여론이 형성되기 전이었다. 그런 움직임이 강해진 건 오히려 최근 들어서다. 바츨라프 광장의 오래된 건물을 폐쇄하고 유리로 된 쇼핑몰을 세우려는 계획이 최근 추진됐으나 시민의 거센 항의로 무산됐다. 물론 전통의 수호가 때론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일례로 한 유명한 건축가가 외곽 공원에 도서관을 지으려다 마찬가지로 반대에 부딪쳐 계획을 취소했다. 나는 맹목적 보수주의자가 아니다. 전통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건축적 가치를 지닌 현대 건물의 건립은 필요하다고 본다.”

_당신이 쓰는 거의 모든 소설에 피와 살인이 등장한다.

“몇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겠는데 첫 번째는 내재된 분노다. 나뿐 아니라 많은 체코인이 술집과 온라인에서 현 사회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다. 2001년 발표한 ‘물의 정령’은 환경에 대한 소설이었지만 과격한 표현 때문에 평단으로부터 ‘에코 테러리즘’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또 하나의 요인은 집필 당시의 내 나이다. 나는 젊고 혈기왕성했었고 소설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용서의 폭이 넓어지고 분노가 줄어든 것 같다. 문학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_냉소적이 된 건가.

“그걸 눈치챘다면 훌륭하다(웃음). 솔직히 말하면 아직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_1992년부터 지금까지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현재 체코 출판?문학계의 고민은 무엇인가.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체코에서는 문학의 예술적 가치를 주장하는 것이 가능했다. 문학에 대한 열정이 책을 선택하고 출판하는 유일한 기준이었다. 그러나 시장경쟁 체제가 도입되면서 베스트셀러의 기준이 세계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어느 출판사도 판매량과 예쁜 표지에 대한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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