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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에 함성 작아졌지만 축구로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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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에 함성 작아졌지만 축구로 하나"

입력
2014.06.1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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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대로 2만4000명 몰려

가족부터 조기 출근족까지

싸이 공연보며 대~한민국

세월호 분향소 옆 광화문

1만6000여명이

차분하게 러시아전 관전

국내 러시아인들도 "올레"

양국 국기 흔들며 응원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한국 대 러시아전이 열린 18일 오전 1만6,000여명의 시민이 붉은 옷을 입고 서울 광화문광장을 가득 베운 채 응원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hongik@hk.co.kr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한국 대 러시아전이 열린 18일 오전 1만6,000여명의 시민이 붉은 옷을 입고 서울 광화문광장을 가득 베운 채 응원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hongik@hk.co.kr

“비겼지만 잘 싸웠다.”

브라질월드컵 러시아전이 펼쳐진 18일 아침, 후반 23분 이근호의 선제골에 대한민국이 들썩였다. 이른 시간이지만 이날만큼은 기말고사를 앞두고 밤을 지새운 여고생도,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도, 교환학생으로 한국을 찾은 푸른 눈의 외국인도 거리로 쏟아져 나와 태극전사의 투혼에 힘을 보탰다.

환희의 함성은 불과 6분 뒤 러시아의 동점골이 터지며 탄식으로 바뀌었지만 1대1 무승부로 본선 첫 경기를 마친 축구 국가대표팀을 향해 온 국민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2만4,000여명이 몰린 서울 영동대로는 전날 오후 8시부터 속속 모여든 열성팬들 덕에 응원 열기가 일찌감치 달아 올랐다. 남편과 초등학생 아들, 딸을 모두 데리고 오후 9시쯤 자리를 잡은 이소영(39ㆍ여)씨는 “세월호 참사로 침울한 분위기이지만 축구로 하나된 대한민국을 보여주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아예 이틀 전 경남 거창에서 올라 왔다는 이혜진(29ㆍ여)씨는 “가수 싸이의 공연도 보고 승리의 기쁨도 만끽하고 싶어 상경했다”며 “월드컵은 그 자체로 축제”라고 즐거워했다.

오전 6시쯤 싸이의 등장에 이어 조기 출근을 감행한 직장인 부대가 응원전에 가세하면서 영동대로 일대는 우렁찬 함성으로 뒤덮였다. 희비가 교차한 90분 사투가 끝나자 응원단은 아쉬워하면서도 태극전사들의 투지 넘치는 플레이에 찬사를 보냈다. 조각가 이찬웅(28)씨는 “비겼지만 우리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며 “국민 모두가 축구 대표팀에 큰 빚을 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거리 응원의 양대 산맥인 광화문은 인근 서울광장에 세월호 추모 분향소가 있기 때문인지 한결 차분한 분위기 속에 응원이 진행됐다. 당초 2만명이 운집할 것으로 판단한 경찰의 예상과 달리 모인 인원은 1만6,000여명에 그쳤고, 4년 전 광장 일대를 붉은 용광로로 물들였던 단체 티셔츠도 드물었다. 밤새 시험 공부를 하다 나왔다는 고교생 임지원(17)양은 “모인 사람은 적지만 승리를 염원하는 마음이 선수들에게 꼭 전달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 거주하는 러시아 응원단도 자국 선수들의 플레이에 열광했다. 이태원 러시안 레스토랑 에르미타주에는 이날 새벽부터 60여명이 가득 들어찼다. 후반전 중반까지 한국팀의 거센 압박에 전전긍긍하던 러시아 응원단은 케르자코프의 만회골이 들어가자 일제히 보드카 술잔을 부딪치며 “올레(힘내라)! 러시아”를 외쳐댔다. 한국외대에 교환학생으로 와 있는 알리 가푸러프(22)씨는 “승패를 가르는 것보다 무승부로 끝나니 한국과 러시아가 더욱 돈독해진 것 같다”며 양국 국기를 흔들어 보였다.

국민 축제를 맘껏 즐기지 못한 일부 응원단들도 있었다. 특히 기말고사 시험 기간인 대학생들은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영동대로 응원에 동참한 대학생 이한슬(20)씨는 전반전이 끝난 뒤 노트북을 켰다. 그는 “오전 10시에 시험이 있는데 응원을 안 할 수 없어 짬을 내 시험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국대 본관 중강당에 모인 대학생 400여명도 경기가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도서관으로 향했다.

러시아전만큼은 ‘월드컵=대박’ 공식도 사라졌다. 신촌에서 14년째 호프집을 운영해 온 조정수(40)씨는 “내심 기대 했는데 이렇게 손님이 적은 월드컵은 처음”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러시아전은 슬픔을 딛고 다시 태어나는 대한민국을 위한 다짐의 장이기도 했다. 경기 시작 전 서울 광화문과 브라질 쿠이아바 판타나우 경기장에선 ‘다시 일어나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여!’라고 적힌 대형 펼침막이 동시에 나부껴 세월호 참사 극복의 의지를 되새겼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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