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호, 4년 전 한 풀었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골이다. 4년을 기다려왔다.”
한 달 월급으로 14만9,000원을 받는 육군 병장이 러시아를 혼쭐냈다. ‘바람의 아들’ 이근호(29ㆍ상주 상무)가 생애 첫 월드컵 무대에서 한국의 첫 번째 골을 기록했다. 이근호는 18일 오전(한국시간) 브라질 쿠이아바의 아레나 판타나우에서 열린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 러시아와의 경기에서 후반 23분 강력한 오른발 중거리슛으로 선제골을 터뜨렸다. 경기가 1-1 무승부로 끝나면서 빛이 바랬지만 이근호는 남은 경기에서 홍명보호의 주요 공격 옵션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이근호는 이번 대회 32개국 736명의 출전 선수 가운데 연봉이 가장 적다. 지난 6월 초 병장으로 진급했으며 1년에 178만8,000원을 받는다. 그의 몸값은 ‘제 2의 야신’이라 불리는 러시아 골키퍼 이고리 아킨페예프(약 305억원)보다 약 1만7,000배 적은 수치. 상주 상무 축구단은 경기 후 “병장 월급으로 이렇게 많은 문의전화를 받긴 처음”이라며 “이근호는 다른 병장들처럼 14만9,000원의 월급을 받는다”고 밝혔다.
시원한 ‘한풀이’였다. 이근호는 그 동안 브라질 월드컵을 간절히 준비해왔다. 4년 전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하는 시련을 맛봤기 때문에 누구보다 체력, 기술 훈련에 집중했다. 당시 이근호는 2010 남아공 월드컵 예선에서 맹활약하며 대표팀을 본선으로 이끌었다. 허정무호의 ‘황태자’라는 소리까지 들으며 승승장구 했다. 하지만 본선 직전 유럽 진출 실패로 컨디션 난조를 겪었고 허정무 감독은 결국 그의 이름을 최종 명단에서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
낙담한 이근호는 몰래 공항을 빠져나갈 만큼 충격이 심했다. 함께 남아공행이 불발된 신형민, 구자철 등은 인천공항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근호는 취재진을 피하기 위해 다른 게이트로 빠져 나갔다. 그는 “도저히 취재진 앞에 설 자신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며 “그만큼 받아들이기 힘든 엔트리 탈락이었다”고 회상했다.
절치부심한 이근호는 아시아 최고의 선수로 우뚝 서며 아쉬움을 달랬다. 그는 2012년 아시아축구연맹(AFC)에서 소속팀 울산 현대를 정상으로 이끈 데 이어 올해의 선수상도 거머쥐었다. 이후에도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했던 이근호는 무난히 홍명보호에 승선했고 지난해 9월 아이티, 크로아티아와의 평가전에서는 2경기 연속골을 넣으며 대표팀의 ‘특급 조커’로 자리매김했다.
시원한 대포알슛으로 마음 고생을 털어버린 이근호는 “원래 동료 공격수에게 패스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슈팅 연습할 때 받았던 좋은 느낌이 갑자기 떠올라 과감하게 슈팅을 시도했다”고 웃었다. 이어 “내 골이 결승골이 못 돼서 아쉽다. 알제리전에는 더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오랫동안 꿈꿔왔던 골이다. 현실이 되니까 실감이 안 난다. 자신감이 실려서 운까지 따랐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함태수기자 hts7@hks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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