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년 광주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재난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국민에게 많은 실망을 안겨줬다. 국가가 우릴 지켜줄 거라는 신뢰도 사라졌다. 이에 정부는 ‘국가안전처’라는 별도의 재난안전 담당 조직을 만들어 국민안전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더불어 지난 10여년 간 계속 무산됐던 ‘국가재난안전 통신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도 최근 밝혔다.
국가재난 안전통신망은 대형사고 발생시 경찰, 소방과 같은 재난 대응기관이 일원화된 의사소통을 통해 일사 분란하게 대처하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반드시 필요하다. 대형재난 발생을 사전에 예방하고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조속히 구축돼야 한다. 이를 위해 미래창조과학부가 기술방식을 선정하고 필요한 주파수를 배정할 예정이지만, 여기엔 안타깝게도 재난방송에 대한 대책과 고민이 빠져 있다. 재난시 관계기관의 의사소통을 위한 전용통신망 구축은 필요하다. 하지만 이 망은 일반 국민이 사용할 수 없는 별도의 통신망이다. 따라서 재난시 국민들에게 가장 쉽고 빠르게 정보를 전파할 수 있는 차세대 재난방송망 구축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현재 국내 지상파 방송사들은 700㎒ 대역 주파수를 활용해 초고해상도(UHD) 방송을 추진할 계획을 세우고, 각 사별로 UHD 실험방송을 실시 중이다. 이런 방송사들에게 차세대 UHD 방송이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도록 재난방송으로서의 공익적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재난 매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토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유는 방송매체가 재난 발생시에 정보 전달자로서 국민의 안전을 보호한 사례가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12년 미국 동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샌디’의 영향으로 뉴욕 등 대도시의 820만 가구가 일주일간 대중교통이 끊기고 정전과 통신두절로 피해를 입었다. 대형 재난임에도 불구하고 사망자 수는 20여 명 수준이었다. 재산 피해 규모에 비해 인명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었던 것은 주요 방송사의 긴급 재난방송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교통과 통신이 두절된 상태에서 방송을 통해 재난에 관련된 실시간 정보와 대피 요령, 피해시 대처 방법 등을 상세히 알려줘 위기 상황에 몰린 시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준 사례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2011년 동북부 지역의 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와 원전폭발이라는 복합적인 대규모 재난이 발생했음에도 당시 피해지역 주민들의 91%가 방송을 통해 최초 재난정보를 접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눈길을 끈다. 이런 설문결과를 통해서도 재난 방송의 실효성은 입증된다. 다시 말해 재난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들 중에 방송이 가장 광범위한 지역에 신속하게 관련정보를 전달하는 영향력 높은 매체라는 뜻이다.
따라서 재난시에 위험에 처한 국민들이 긴급 방송을 손쉽게 시청할 수 있도록 새로운 차세대 방송기술 도입이 검토돼야 한다. 아울러 주파수 할당도 국민의 안전을 고려해 재난통신망과 함께 고려돼야 한다.
재난 통신망과 차세대 재난 방송망 구축을 위한 주파수는 디지털TV(DTV) 전환을 완료한 뒤 현재 비어있는 700㎒ 대역 주파수를 이용해 당장 구축할 수 있고 조기 상용화도 가능하다. 즉, 700㎒ 대역을 국민의 안전과 보호를 위한 ‘공공’의 대역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왜냐하면 주파수는 국민이 소유한 유한한 자원으로 당연히 국민의 이익을 위해 공익적으로 우선 활용돼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700㎒ 주파수 대역의 활용 계획은 2007년 수립된 ‘모바일 광개토 플랜’을 바탕으로 마련됐다. 여기에는 재난통신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 따라서 안정적인 재난통신망과 방송망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700㎒ 대역의 일부를 재난통신망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대역은 재난시에도 원활하게 방송을 수신할 수 있는 차세대 재난방송을 위한 망으로 구축함으로써 공공재산인 주파수가 국민의 안전을 위해 쓰이는 ‘국민 보호’ 밴드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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