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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 박수받을 생각 버려라

입력
2014.06.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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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 경제팀, 장기ㆍ구조적 체질강화 힘써야

경제운용 기본 목표는 일자리 창출과 국민행복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알고 보니 진짜 고수(高手)더라.” 전직 고위관료가 사석에서 한 말이다. 노 대통령이 당선된 뒤 경제팀의 브리핑을 받았는데, 당시 신용카드 규제완화로 ‘카드대란’이 일어나 신용불량자가 속출하는 상황이었다. 경제팀은 인위적 수단들을 동원, 화끈하게 경제를 살리는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러자 “좋습니다. 그런데 제 임기 4년째쯤 그리 되게 해주세요”라며 이를 일축하더라는 것이다.

뜬금 없이 노 전 대통령 에피소드를 끄집어 낸 건 최경환 경제팀에 대한 몇 가지 걱정 때문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박근혜 정부의 실세 정치인이다. 전임자의 무기력한 모습과는 달리 파격적 방식으로 경기 띄우기에 나설 공산이 크다. 실제 그는 부동산 대출규제완화 등 “분위기를 확 바꿀” 내수 살리기 정책을 내놓을 태세다. 문제는 현재 1,0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로 서민 경제가 어려움에 빠진 것이 빚을 내어 집을 사도록 한 부동산 부양정책에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주택시장 대출을 추가로 풀겠다는 건, 빚을 더 늘려 문제만 키우겠다는 발상이다. 설령 성공하더라도 부동산 버블, 소득분배 악화 등 예기치 못한 재앙에 맞닥뜨릴 수 있다. 결국 민간소비 회복은 가계소득이 늘지 않는 한 어렵다. 경제혁신을 통해 일자리를 확충하는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걱정스러운 점은 또 있다. 최 후보자가 전통적 성장우선론자라는 점이다. 그는 “향후 5~10년은 높은 성장률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성장해야 복지 여력도 생긴다는 주장, 성장을 통해 일자리를 제공하면 저소득층의 소득이 늘어 양극화 해소에 기여한다는 논리가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경제는 성장하면 어느 순간부터 산업구조가 변하면서 이른바 ‘고용 없는 성장’ 단계에 들어선다. 지금 한국 경제가 빠진 최대 함정이다. 수출대기업과 IT기업은 잘 나가지만, 그 성과가 근로계층이나 저소득층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양극화를 해소하려면 성장을 어떻게 일자리 창출로 연결 짓느냐가 관건이다.

새 경제팀이 경제혁신에 성공하려면 경제운용의 틀을 바꿔야 한다. 다시 말해 전통적 성장우위 방식이 아니라, 성장중심의 경제정책과 사회복지정책이 함께 맞물려 돌아가는, ‘성장-일자리-복지’ 삼각 패키지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그 핵심은 밥이고 희망이고 미래인 일자리다. 전체 고용의 88%를 담당하는 중소ㆍ벤처기업을 성장의 주역으로 만드는 산업구조개혁이 필수적인 이유다. 미래 먹거리를 찾는 신성장 동력 발굴이나, 규제개혁도 양질의 일자리창출에 궁극적 목표를 둬야 하는 까닭이다.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나쁜 규제와 좋은 규제를 가릴 필요성이 커졌다. 규제개혁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일자리를 만드는 수단으로 봐야 한다. 안전, 환경보호, 공정경쟁 등 필요한 규제는 강화하되, 과학기술 흐름과 어긋나거나, 혁신의 동기를 꺾는 규제, 시장의 실패와 왜곡을 조장하는 규제는 던져야 한다. 특히 원격의료나 휴대폰을 통한 건강정보제공 등 정보통신 발달로 인한 새 산업군 등장을 막는 규제부터 손봐야 한다.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는 복합적ㆍ중층적이다. 글로벌 상시 위기 속에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 양극화의 파고를 헤쳐 나가려면 성장과 증세, 규제완화와 최저임금인상 등 이질적이고 상반된 조합을 통한 과감한 역발상과 비전통적인 유연한 사고가 요구된다. 가령 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임금인상 억제가 미덕인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일본 아베 정권에서 보듯 내수회복을 위해 대기업들의 임금인상을 독려하는 것도 필요한 상황이다.

현 정부 임기가 벌써 4분의 1이 지났다. 그렇다고 최경환 경제팀이 초반에 박수 받을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섣부른 경기부양보다는 기초체력 강화에, 성장률에 얽매이기 보다는 장기 구조개혁에 힘을 모아야 한다. 무엇보다 보통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국민 행복’에 기여하는 경제운용 원칙과 기조를 천명하고 소통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이런 저런 걱정에도 불구하고 소통감각을 지닌 정치인 출신 경제사령탑에 기대를 걸고 싶다.

박진용 논설위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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