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잡지 한 페이지에 검정색 수영복을 입고 시크한 표정으로 포즈를 취한 예사롭지 않은 몸매의 모델이 서 있다. 키 165㎝, 몸무게 68㎏인 그녀의 옷 사이즈는 88. 국내 최초로 등장한 ‘플러스 사이즈’(기성복 표준 사이즈보다 큰 사이즈) 패션 문화 잡지, ‘66100’의 기획자이자 모델인 김지양(28)씨다.
플러스 사이즈는 미국 기준으로 사이즈 12이상을 지칭하는 말로, 한국에선 여성복 기준 99~100 정도다. 2010년 한국인 최초로 플러스 사이즈 패션 행사인 ‘FFF(Full Figured Fashion) Week’에서 데뷔한 김씨는 44사이즈 추종문화에 대한 반기를 드는 패션문화 잡지 ‘66100’을 제작했다. 한국 기성복의 한계로 여기는 여성 66사이즈와 남성 100사이즈에서 이름을 따온 ‘66100’은 평균보다 큰 체형의 사람들을 위한 패션잡지다.
김씨는 패션업계의 획일적인 옷 사이즈가 ‘행복추구권’을 박탈한다고 주장한다. 김씨는 “외국에 어학연수를 간 여대생들이 살이 쪄서 귀국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나치게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도 입을 옷 사이즈가 다양하니 스트레스를 안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66100’을 만들며 김씨는 우리 사회를 잠식한 ‘마른 몸’에 대한 집착을 실감했다. 외모나 체형에 자신이 없는 독자의 응모를 받아 화장과 코디 등으로 변신을 시켜주는 코너에 키 170㎝에 60㎏도 안 되는 여성이 ‘뚱뚱하고 못생겨 고민’이라며 신청서를 내는 것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뚱뚱하다’는 낙인을 두려워하는 분위기도 체감했다. 김씨는 “‘66100’을 판매하려고 처음 판매대에 내놨을 때 만지작거리며 눈치를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며 “‘이걸 사면 나를 뚱뚱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하고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편에선 “(뚱뚱한) 현재의 나를 긍정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는 독자의 반응에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플러스 사이즈라는 것을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많은 이들에게 자존감을 되찾아 줄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 김씨는 “당신의 사이즈가 어떻든, 당신이 현재 행복하다면 그걸로 된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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