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그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유출한 혐의로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된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을 직권으로 정식재판에 회부했다. ‘대놓고 여권 봐주기’란 비판을 받았던 검찰의 결정에 제동을 건 것이다. 재판부는 이날 국가정보원 대선개입과 관련해 국정원 여직원을 감금한 혐의로 약식기소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4명도 정식재판에 넘겼으나 이는 무죄를 주장하는 피고인들의 청구를 받아들인 것이어서 경우가 다르다.
약식기소는 벌금ㆍ과료 등 재산형을 내릴 수 있는 사건에 대해 청구하는 것으로, 법정출석 없이 서면심리로 진행된다. 주로 교통사고 등 경미한 사건에 적용되지만, 검찰이 기소권을 남용해 ‘봐주기’에 악용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의 누나이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모친인 김문희(86) 용문학원 이사장의 거액 횡령 사건이 대표적이다. 검찰은 지난 3월 고령과 초범, 피해금액 변제 등을 이유로 벌금 2,000만원에 약식기소했으나, 법원은 정식재판에 넘겨 징역 2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와 청문회에 불출석한 혐의로 약식기소된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도 정식재판에 회부돼 검찰 구형(벌금 400만~700만원)보다 높은 벌금 1,000만원을 선고 받았다.
국가기밀을 빼내 선거에 이용한 정 의원의 혐의는 이들 사건과는 차원이 다른 중대 범죄라는 점에서 정식재판 회부는 당연한 결정이다. 정 의원은 재판 결과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잃는다. 재판 과정에서 새로운 증거가 드러날 경우 석연치 않은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받은 김무성 의원과 권영세 주중대사 등도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엄정한 재판을 통해 검찰이 사실상 포기한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규명되기를 기대한다.
더불어 검찰의 자성과 쇄신을 거듭 촉구한다. 김진태 검찰이 정치권 눈치보기에 여념이 없는 듯한 행보를 계속 이어간다면, 체면을 구기는 정도를 넘어 존립 자체가 위태로울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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