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에 델타포스 투입 습격 핵심 인물 카탈라 생포 총성 없이 비밀 작전 성공
외교적 무능 비판 공세 펴던 공화당 보수 진영 침묵시켜
장관 퇴임 직전 오점 남긴 클린턴에게도 희소식
현지 시간으로 16일 밤 자정 미국 육군 특수부대 델타포스 20명이 연방수사국(FBI) 요원들과 함께 리비아 벵가지 외곽의 한 장소를 급습했다. 하늘에는 수대의 무인공격기 드론이 떠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델타포스는 현장에서 턱수염이 길게 자란 한 남성을 붙잡자 그를 차량에 밀어 넣고 빠른 속도로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 남성은 곧바로 지중해에 배치된 미 군함으로 옮겨져 구금됐다. 2년 전 벵가지 미국 영사관을 공격해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대사와 국무부 직원, 중앙정보국(CIA) 관계자 등 4명을 숨지게 한 무장세력의 핵심 인물 아흐메드 아부 카탈라(사진)의 체포는 이렇게 조금은 싱겁게 끝났다. 한발의 총성도 울리지 않았고, 민간인은 물론 미군 부상자도 나오지 않았다.
교과서 같은 카탈라 체포 작전은 지난 13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공식 승인을 내린 뒤 은밀히 진행됐다. 미국은 리비아 정부에도 이 작전을 알리지 않았다. 당시 정보 당국은 수개월간 행적이 묘연했던 카탈라가 한 장소로 이동할 것이란 정보를 입수해 놓고 있었다. 미국은 작전이 벌어지던 시점에 이라크 반군 문제를 부각시키며 리비아에 관심이 없다는 거짓 신호를 보내기까지 했다. 또 체포 작전은 법률적 문제와 의회 승인 문제를 피하기 위해 군사 작전이 아닌 일반 사건의 혐의자 검거 방식으로 진행됐다.
벵가지 출신으로 40대 초반인 카탈라는 무아마르 가다피 정권에서 오랜 수감생활을 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뉴욕타임스나 로이터 등과 인터뷰에서는 자신을 리비아를 떠나 본 적이 없는 건축노동자라고 소개했다. 카탈라는 리비아 혁명 기간 생겨난 무장세력의 일원으로 활동하다 2011년 20명 남짓 조직원으로 자신의 부대를 만들었다.
그의 부대가 명성을 얻은 것은 그 해 서방 지원을 받는 반군 사령관으로 노선을 바꾼 압델 파타 유네스 전 내무장관을 붙잡으면서부터다. 카탈라에 붙잡혔던 유네스는 7월 말 총탄자국으로 만신창이가 된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로부터 1년 2개월 뒤 벵가지 미 영사관 습격 사건이 났다.
17일 미 국방부, 법무부, 백악관이 일제히 카탈라 체포 사실을 공개하자 가장 놀란 곳은 공화당이었다. 바로 전날까지 헤리티지재단 등에서 벵가지 사태를 주제로 오바마 정부를 성토했던 보수 진영은 침묵 모드로 돌아섰다.
카탈라 체포를 누구보다 반긴 주인공들은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으로선 최근 이라크, 시리아, 우크라이나 문제로 외교적 무능 비판에 처한 때 나온 단비 같은 호재였다. 그는 “미국인이 공격받으면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그 책임자를 심판대에 세울 것이란 메시지를 전세계에 보내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국무장관 퇴임 직전 벵가지 사건이 터져 책임 논란에 휘말리는 오점을 남겼던 클린턴 전 장관도 안도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오사바 빈 라덴의 (9ㆍ11테러)책임을 묻기까지 10년이 걸렸는데 이번에는 2년여 만에 성공했다”며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미국 정치권은 당분간 카탈라가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희비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시비의 핵심은 벵가지 영사관이 공격받기까지 오바마 정부, 클린턴 전 장관이 적절한 대응을 했는지 여부다. 카탈라는 수일 내 미국으로 옮겨져 일반 법정에서 재판을 받을 예정이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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