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짧아진 환호성... 광장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입력
2014.06.18 15:30
0 0
세월호 침몰사고 21일째이자 석가탄신일인 지난달 6일 팽목항 방파제에서 저녁 실종자 가족들과 화쟁코리아 100일순례단, 일반 시민들과 함께 실종자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풍등을 날리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세월호 침몰사고 21일째이자 석가탄신일인 지난달 6일 팽목항 방파제에서 저녁 실종자 가족들과 화쟁코리아 100일순례단, 일반 시민들과 함께 실종자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풍등을 날리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월드컵 시즌 막이 올랐지만

미증유의 비극 세월호 침몰은

우리 내면에서 검열관 노릇 해

南美의 무한한 상상력과 도전정신...

축구 너머 말하는 메시지를 읽어야

진지한 '세월호 이후' 논의 가능해져

여느 때 같았으면 ‘마침내’ ‘드디어’ ‘바야흐로’와 같은 거창한 부사어로 시작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한정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드컵이 개막됐다. 아직도 노란 리본을 달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인류 최대의 축전은 ‘그들만의 리그’일 수밖에 없다.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애도, 유가족에 대한 위로가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월드컵 축구대회는 사치스런 이벤트에 불과해 보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드컵 시즌이 시작됐고, 드디어 어제 아침, 일부 한국인들이 표준시를 바꾸었다. 브라질 시간대에 맞춘 것이다. 몸은 한반도의 출근 시간에 맞춰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눈은 저마다 액정 화면에 가 있었다. 저마다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지켜본 월드컵. 우리는 더 이상 붉은 악마가 아니었다. 태극기를 들고 광장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튀긴 닭을 앞에 놓고 생맥주잔을 치켜들 수가 없었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나라의 미안한 국민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래서 이근호의 중거리 슛이 러시아 골키퍼의 머리 뒤로 넘어갔을 때, 환호성은 짧았고, 짧은 환호성에는 뒤끝이 있었다.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승용차 안에서, 길거리에서, 회사 입구에서, 학교 정문 근처에서 두 손을 번쩍 치켜 올렸다가 멈칫 했을 것이다. 옆에 누가 있었다면 서로 눈길이 마주쳤을 것이고, 누구랄 것도 없이 계면쩍었을 것이다. 세월호라는 미증유의 비극이 우리 내면에서 검열관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 대표 선수들의 골 세리머니 위로 여러 장면이 겹쳐졌다. 영문도 모른 채 스러져간 어린 영혼들이, 아들딸을 가슴에 묻은 채 정적에 휩싸여 있는 안산시가, 거대한 여객선이 가라앉아 있는 진도 앞바다가 오버랩 됐다. 세월호 침몰 이후 두 달. 우리는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을 미안하고 부끄럽고 안타까운 것이다. 그래서 곧이어 터진 러시아의 추격 골이 다행스러웠는지도 모른다. 러시아를 이겼다면, 우리의 미안함은 더 커져서, 우리의 어제 점심 식사 자리가 더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언제까지 세월호를 물고 늘어질 것이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세월호는 세월호고 월드컵은 월드컵이라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세월호 유족들이 ‘월드컵을 즐기시라’는 권유까지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아직도 진도 앞바다에는 건져 올리지 못한 주검이 있다. 참사가 일어난 지 두 달이 지났는데도 무엇 하나 밝혀진 것이 없다. 오피니언 리더들은 ‘세월호 이후’를 화두로 내세우고 있지만, 사태의 진상 규명에 관한 한, 사태의 공적 처리에 관한 한, 우리는 여전히 세월호 이전에 있다.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관점을 조금 달리 하면, 세월호 사태와 브라질 월드컵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세월호 사태가 한국 사회의 총체적 문제점을 노출시킨 대사건이라면, 브라질로 대표되는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적 실험과 경제적 도전은 우리에게 매우 유의미하다. 월드컵을 계기로 우리가 남미 여러 나라의 ‘거대한 전환’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다면, 우리는 이번 월드컵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단, 우리가 동참해야 하는 월드컵은 축구경기장 밖에 있다. 남미에서 진행 중인 진정한 월드컵은 한마디로 ‘반세계화의 월드컵’이다.

룰라의 브라질을 보자. 퇴임 이후 월드컵과 관련해 비판이 없지 않지만, 2003년부터 8년간 브라질을 이끈 룰라는 성장과 분배를 조화시키며 ‘모든 국민이 보다 높은 존엄성을 갖고 잘 사는 나라’를 추구했다. 차베스의 베네수엘라는 어떤가. 전 국민에게 돈키호테를 읽도록 한 차베스는 결국 풀뿌리 민주주의를 살려냈다. 마르코스 부사령관은 멕시코의 산악지역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이곳에서는 민중이 통치하고 정부가 복종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저항해온 남미에서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문학과 예술의 ‘무기화’다. 파라과이와 콜롬비아를 제외한 남미 대륙은 시와 소설, 연극과 노래를 통해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지향했다. 네루다와 바예호의 시, 메르세데스 소사와 빅토르 하라의 노래, 그리고 남미가 간직해온 수많은 전설과 이야기들이 주민을 민중으로, 시민으로 거듭나게 했다(<녹색평론> 2014년 1ㆍ2월호 참조).

우리가 브라질 월드컵에서 남미의 무한한 상상력과 놀라운 창의성, 열정적인 도전 정신을 재발견할 수 있다면, 그때부터 ‘세월호 이후’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가능해질 것이다. 월드컵 축구대회 너머에서 남미대륙이 말하고 있다. 지금과 다른 세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스타일은 달라도 마음은 하나.' 다양한 응원도구로 멋을 낸 축구팬들이 18일 서울 광화문광장과 영동대로에서 브라질 월드컵 한국-러시아전을 보면서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뉴시스ㆍ연합뉴스
'스타일은 달라도 마음은 하나.' 다양한 응원도구로 멋을 낸 축구팬들이 18일 서울 광화문광장과 영동대로에서 브라질 월드컵 한국-러시아전을 보면서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뉴시스ㆍ연합뉴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