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Bali) 관광청이 자랑하는 ‘에머랄드 빛 바다와 세계 최고 수준의 호텔 및 리조트’는 없었다. 비행기 대신 자동차로 4시간을 달려 3,40년은 되돌아간 듯한 ‘오래된 풍경’과 만났다.
고향자랑에는 조금의 과장이 섞이기 마련이다.‘천하수 지상비(天下首 地上比)’ 하늘아래 으뜸이고 땅 위에 버금가는 곳이란다. 경북 영양군 수비면의 첫 관문인 한티재에 설치된 관광안내판 문구다. 이 정도면 과장에 허세까지 엿보인다. 아무렴 어떤가? 이곳은 발리다. 수비면의 소소한 것까지 기록해 놓은 면지(面誌)에 따르면‘중국의 수양산에 비할 만큼 충의열사가 많고 아름다운’곳이어서 수비면이고 그 첫 마을이어서 발리(發里)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발리소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수령 250년 된 느티나무 10여 그루가 방문객을 반긴다. 매년 정월 15일 동제를 열어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곳이다. 공원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면 발리의 ‘번화가’(이것도 수비면지의 표현이다)로 이어진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파란 기와지붕의 청풍식당. 면 민들의 다양한 입맛을 만족시키기 위해 한식과 중식에 불고기까지 갖췄다. 더 적극적인 곳도 있다. ‘간이역’은 치킨에 꼬치구이 꼼장어 낙지까지 취급하며 주민들의 간식과 술안주를 두루 책임지고 있다. 발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간판은 다방이다. 면 민을 다 합쳐봐야 2,000명이 안 되는데 다방이 6개다. 슈퍼보다 하나가 더 많다. 실눈으로 흘겨보는 건 순전히 외지인의 선입견이다. ‘아가씨’가 있는 다방은 한 곳뿐이란다. 다른 곳은 대부분 주민들의 ‘수다’방처럼 영업하고 있다. 동네 할머니도 마실 가듯 수시로 다방에 모인다. 서울로 치면 ‘별다방’ ‘콩다방’의 역할을 충분히 한다는 말이다.
500여m에 이르는 번화가의 종점은 발리삼거리에 위치한 삼거리슈퍼. 녹음 짙은 울련산을 배경으로 빨간 지붕이 돋보인다. 최근 새로 지은 건물도 더러 있지만 발리의 대세는 슬레이트와 기와지붕 단층 건물이다. 이런 건물이 중심가에서 당당히 상가로 활용되는 모습은 다른 곳에선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에메랄드 빛 바다 대신 울울창창한 숲으로 쌓여있고, 최고 수준의 호텔 대신 시간의 흔적을 감추지 않은 상가가 올망졸망 터를 잡은 곳, 멋진 리조트 대신 시원한 계곡이 곳곳에 숨어있는 경북 영양군 수비면소재지., 그래! 이곳은 발리다.
영양의 수하계곡과 본신계곡, 검마산 자연휴양림이나 울진의 백암온천, 동해바다로 여행 코스를 잡았다면 발리의 ‘오래된 풍경’속에서 잠시 쉬어가는 건 어떤가?
영양=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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