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함성 넘쳤던 응원현장 차분하고 조용히 승리기원
서울광장엔 무거운 적막 흐르고
그래도 두 주먹 쥐고 "대~한민국"
지구촌이 월드컵 열기로 뜨겁다. 그러나 우리는 신이 나질 않는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슬픔과 분노가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은 탓이다. 태극전사들이 경기를 치르는 이 순간 서울광장에는 무거운 적막이 흐르고 있다. 4년 전 대형 스크린과 무대가 들어섰던 광장 구석에서 수만 개의 노란 리본이 새벽바람에 흔들리고 있을 뿐.
과거와는 다르게 월드컵이 다가왔다. 첫 경기를 하루 앞둔 17일까지도 거리에서는 들뜬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다. 흔한 월드컵 응원가 한 소절 들리지 않고 넘쳐나던 승리 기원 문구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4년 전만 해도 빌딩마다 내걸렸던 태극전사들의 대형 사진 역시 자취를 감췄다. 심지어 서울 신문로 대한축구협회조차 대표팀 선전을 기원하는 대형 걸개그림을 건물에 내걸지 않았다. 협회 관계자는 16일“이번 월드컵 기간 응원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어떤 계획도 세우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대한축구협회 외관도 썰렁
사회적 추모 분위기를 감안해 월드컵 마케팅이나 이벤트를 자제하기는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남아공월드컵 때만 해도 대형 걸개그림을 사옥에 걸고 직원들이 응원 이벤트도 벌였지만 이번에는 그런 행사를 개최하지 않았고 계획도 없다”고 말했다.
대형 빌딩에도 걸개 없고
광장엔 함성 사라져
시청역엔 선전 기원 문구 없어
4년 전만 해도 한 집 건너 하나 꼴로 불티나게 응원 티셔츠를 팔아 치웠던 남대문시장 상인들은 요즘 속이 타 들어갈 지경이다. 세월호 여파로 매출이 급감한데다 거리응원 마저 대부분 취소되면서 월드컵 특수를 기대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응원 티셔츠 3,000장을 들여놓았다는 상인 양윤옥(55)씨는 “1998년 프랑스월드컵부터 응원티셔츠를 팔았는데 이번처럼 안 팔리는 경우는 처음”이라며 “광화문광장에서 거리응원을 하기로 했다니까 그나마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남대문시장, 월드컵 특수 사라졌고
월드컵의 벅찬 함성 없이 결전의 날이 밝았다. 광화문 광장에서 거리응원을 펼칠 붉은 악마는 ‘조용한 거리응원’을 선언했다. 흥을 돋우는 공연이나 대규모 퍼포먼스도 대폭 줄였다. 거리를 가득 메운 응원의 물결이나 환호성은 사라졌지만 우리는 승리를 원한다. 비장한 각오로 전장에 나선 태극전사들의 선전을 차분하고 조용하게 기원하자. 모두가 하나 되어 외쳤던‘대~한민국’은 거리가 아닌 우리 가슴 속에서 뜨겁게 울려 퍼질 것이다.
사진부 기획팀=박서강기자 pindropper@hk.co.kr, 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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