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여전히 반성하는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침몰하는 세월호에 갇힌 승객들을 내버려두고 탈출하기 바빴던 이준석(68) 선장 등 선원 15명 중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사람은 1등 기관사 손모(57)씨 1명뿐이었다.
지난 10일 첫 공판준비기일 때 “탈출이 아니라 해경에 의해 구조된 것”이라고 주장했던 나머지 선원들은 17일 열린 2차 준비기일에서 사고 당시 최초로 현장에 도착했던 해경 구조대원 등을 증인으로 신청키로 했다. 자신들에게 씌워진 살인과 살인미수, 유기치사ㆍ상 등의 혐의가 부당하다는 점을 입증하겠다는 것이다.
이날 광주지법 형사11부(부장 임정엽) 심리로 열린 두 번째 공판준비기일에서 손씨는 변호인을 통해 “공소사실을 모두 시인한다”고 밝혔다. 손씨 변호인은 “수난구호법과 세월호 운항관리규정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못한 것에 대해 선장 등에게 지시를 못 받아 무죄라고 주장하지 않고, 순식간에 배가 기울어 승객들을 구조하지 못했다는 변명도 하지 않겠다”며 “다만 수사 개시 후 죄책감에 자살을 기도했고 고혈압 등 지병이 악화된 사정 등을 양형에 반영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다른 선원들은 달랐다. 이들은 국선 전담 변호인들을 통해 “배가 급속히 침몰하는 과정에서 위난(危難)을 피해 배를 빠져 나온 긴급피난에 해당돼 위법성이 없다”“구조활동 포기로 그렇게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는지 의문”이라는 등의 주장을 펴며 검찰이 제출한 증거목록 2,500여개 중 상당수 증거에 ‘부동의’의견을 냈다. 특히 이 선장을 비롯한 일부 선원들은 세월호 침몰 당시 조타실 상황과 승객 구조 가능성 등에 대한 해경의 피의자신문조서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며 동료 선원들을 증인으로 세우기로 했다.
세월호 침몰 원인 규명을 위한 전문가 증인 신청을 놓고도 검찰과 변호인단간 신경전이 펼쳐지기도 했다. 변호인단이 사고 당시 승객들에게 퇴선명령을 내렸더라도 살릴 사람이 많지 않았을 것이라며 지난 1차 준비기일 때의 주장을 반복하자, 참다 못한 공판검사가 “변호인께서 피고인들의 말을 그대로 전달하는 역할만 해야 하는 거냐”고 흥분했다. 이 과정에서 방청석에 있던 유족들은 “피고인이 자고 있다”며 재판부에 거세게 항의했다. 술렁이던 법정 분위기는 재판장이 “진실이 뭔지는 (검찰이 변호인 측의)반대 주장을 견뎌내야 한다. 너무 그러지 마라”고 자제를 요구하고 나선 뒤에야 겨우 진정됐다.
재판부는 배의 침몰 원인과 침몰 후 구조 가능성 등을 둘러싸고 검찰과 변호인단이 생존 학생 진술 및 사고 당시 동영상과 구조에 나섰던 해경 등을 증거와 증인으로 신청키로 하자 30일 세월호와 쌍둥이 여객선으로 알려진 오하마나호에 대한 현장 검증을 실시키로 했다. 재판부는 단원고 학생들이 학기말 시험을 마치고 수업이 없는 기간인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2주간 생존자 증언도 듣기로 했다. 다음 공판준비기일은 24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광주=안경호기자 kha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