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게임산업협회인 ESA가 지난 11일 우리나라 국회의원 전원에게 서신을 보냈다. 의원들에게 전달된 서신은 “한국에서 온라인 게임을 알코올과 마약에 상응하는 중독성 물질로 분류해 여러 가지 제재를 가하는 것이 심히 우려 스럽다”는 내용이다. ESA는 이를 국내 법무법인을 통해 영문 원본과 번역본을 함께 담아서 전체 의원들에게 서신으로 발송했다.
ESA가 서신에서 강조한 것은 두 가지였다. 우선 전세계 어디서도 게임을 알코올이나 마약과 함께 치명적 중독성이 있는 것으로 규정한 전례가 없다는 점이다. 나머지 한가지는 온라인게임 등 인터넷에 몰두하는 것을 정신병으로 볼 수 있는 지 의학계에 일치된 의견이 없으니 게임 중독을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국내의 게임 규제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보낸 나라는 미국 뿐만이 아니다. 스페인, 호주, 캐나다, 영국 등 유럽과 아시아태평양지역, 북미지역 등의 12개 국가 게임협회들도 같은 날 성명서를 내고 이를 전체 국회의원에게 전달했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 아니라, 뒤에 숨은 메시지다. 이들은 정부의 게임규제가 한국과 해외 각국 간에 통상 마찰 소지가 있다는 것을 에둘러 경고한 것이다. 실제로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 일본 소니, 유럽의 게임개발업체들은 국내의 게임규제 때문에 게임관련 온라인 서비스를 수개월에서 1년 이상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 동안 이들은 앞다퉈 한국의 게임관련 규제를 시대착오적 발상이며 전대미문의 조치라고 몰아 붙였다. 지금까지는 해외업체들이 이 같은 정부 규제 때문에 국내 진출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역으로 국내게임업체들이 해외수출 시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 게임개발업체들은 이를 여실히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한다. 모 게임개발업체 관계자는 “아직까지 해외에서 국산 게임에 제동을 걸지는 않았지만 앞으로는 통상 마찰을 빚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닌 게 아니라 국내 게임 규제는 법부터 복잡하다. 현재 정부는 게임 과몰입이라는 동일 사안에 대해 강제적 셧다운제와 선택적 셧다운제 등 이중 규제를 하고 있다. 강제적 셧다운제는 청소년 보호법에 따라 밤 12시부터 6시까지 청소년들이 온라인 게임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게임서비스업체들이 강제 차단하는 조치다. 게임산업진흥법에 따른 선택적 셧다운제는 부모가 자녀들의 게임 사용시간과 이용량 등을 정해 놓으면 해당 시간대에 게임 서비스가 되지 않는 조치다.
그런데 이제는 3중 규제로 나아갈 조짐이다. 새누리당의 신의진 의원이 발의한 ‘중독 예방 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 소위 게임중독법은 게임을 마약 알코올 도박과 함께 4대 중독 물질로 규정하고 이를 규제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새누리당 내에서도 반대가 많자 신 의원은 게임만 따로 떼어서 규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한 발 물러섰지만, 어찌됐든 동일 사안을 3가지 법으로 규제하는 3중 규제에 봉착하게 된다.
이처럼 정부에서 정리를 하지 못해 3가지 법을 들이대는 상황이니 해외에서 국회의원들에게 서신을 보내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청소년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게임에 지나치게 몰두하면 문제이지만, 과연 게임 중독을 마약 술 도박과 함께 법으로 다스릴 수 있는 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이런 중독 문제를 법만 만들면 만사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은 큰 오산이다. 맞벌이에 바쁜 부모 때문에 혼자 남겨져 밤 늦게까지 집이나 PC방에서 게임하는 청소년들은 법의 부재가 아닌 가정, 나아가 사회의 구조적 문제다. 게임 과몰입 문제는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더불어 게임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생각해 봐야 한다. 정책금융공사가 지난 4월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2012년 온라인게임 수출액은 26억3,900만 달러로 전세계에 한류 열풍을 일으킨 K팝(2억3,500만달러)의 11배 규모다. 그만큼 수출역군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게임업계 사람들을 졸지에 포르노, 마약 중독자와 동급으로 취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최연진 산업부 차장대우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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