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엽 사진가
지난 사진사(史)에서 풍경 사진가로 이름을 남긴 여럿 중에 안셀 애덤스 만큼 지속적인 존경과 찬사를 받은 이도 드물다. 풍경 사진의 관점과 대상에 대한 해석이 달라진 요즘도 그의 사진과 명성을 쫓는 이들이 많은 것을 보면 그의 묵직한 유산을 한 번 더 되돌아보게 된다. 특히 국내에도 애덤스의 요세미티 공원 풍경사진은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바이블 같이 읽히고, 그처럼 찍고 싶어 대형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지리산과 설악산을 오가는 이들을 본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 대형 카메라와 존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사진을 보며 눈을 의심케 하는 계조와 해상도에만 감탄하지 그가 요세미티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게끔 노력한 존 뮤어의 이상을 사진으로 구현한 환경 운동가라는 사실 말이다.
국립공원은 아니지만 나도 카메라를 메고 산을 오른다. 밀양 화악산 기슭에 한전이 세우려는 송전탑 129번 부지가 있다. 경찰 2,000명이 집결한 평밭 마을 입구에서부터 걸어 붉은 영산홍이 이제야 만개한 고지에 도착한 것은 아침 7시경. 서늘한 공기는 팽팽한 긴장의 기운이 돈다. 송전탑 건설에 반대해 온 평밭 주민들이 건설 부지에 천막을 세우고 토굴에서는 할머니들이 쇠사슬을 감고 누워버렸다. 신부와 수녀들은 그 주변에서 서로서로 팔을 끼고 비장하게 농성장을 지킨다.
밀양 송전탑은 부실공사로 말 많은 신고리 핵발전소 3호기에서 송출 예정인 전력을 실어 나를 총 90.5㎞ 초대형 765㎸ 송전탑 161기 중 69기다. 송전선로가 이어지는 5개 시ㆍ군 중 가장 많다. 2007년 정부의 공사 승인 후 69개 송전탑 중에서 47기가 완성됐고 17기는 공사 중, 그리고 주민들의 반대로 착공하지 못한 5기의 공사를 위해 지금 대규모 경찰병력을 동원해 강제로 쫓아내려 하는 것이다. 이렇게 무리수를 두는 이유는 여럿이다. 첫 번째로는 고리와 월성 등 핵발전소 여럿 곳이 운영 수명을 훨씬 지나 극도로 위험해졌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세계적으로 이 발전소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소리도 높고 지역 주민들의 불안감으로 인해 지자체 역시 폐쇄 쪽으로 정책이 변화하고 있다. 모자라는 핵발전소를 시급해 대체해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둘째 아랍에미트연합(UAE)에 수출한 핵발전소가 고리를 모델로 하고 있어 정상 가동되지 않으면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는 압박도 존재한다. 어느 경우이던 오늘날 한국의 에너지 정책은 미래를 내다보기 보다는 지금 가용한 기술과 자원으로 누군가의 희생을 딛고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최초 보상 문제에 대해 비열한 수법을 쓴 한전의 태도는 보수적이라는 밀양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돈 보다는 생명, 파괴 보다는 평화’라는 구호를 외치는 환경운동가들로 만들고 말았다.
아침 7시 반. 경찰을 앞세운 한전의 행정대집행이 시작됐다. 주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수녀와 환경 활동가들은 경찰들에 의해 강제로 들려 나갔다. 토굴에서 쇠사슬로 몸을 엮고 있던 주민 할머니들은 절단기를 들이대는 남성 경찰들 앞에서 알몸을 드러내야 했다. 수백명의 경찰들 워커발에 붉디붉은 영산홍은 무참히 밟혀나갔다. 4년간 이어오던 주민들의 저항의 흔적이 지워지기까지 채 1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경찰이 발급한 비표를 갖고 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알 권리, 알릴 권리’도 무시당한 채 현장에서 쫓겨나야 했다. 경찰에 의해 자행되는 이 무법천지가 고도 500m 화악산 자락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털레털레 홀로 산길을 내려오며 멀리 완공된 송전탑이 보였다. 산 정산에 거대하게 우뚝 선 송전탑은 주변 자연환경과 너무도 이질적이다. 하지만 전국 방방곡곡 산맥을 굽이치며 이어지는 송전탑은 이제 흔한 풍경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카메라 들고 다니며 풍경 사진을 찍는 이들은 포토샵으로 송전탑을 지우는 것이 일상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 사진은 우리의 현실이 아니다. 가공되고 조작된 이상화된 풍경에 불과하다. 풍경사진을 찍으려면 풍경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 권력과 자본이 만들어 놓은 체념의 풍경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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