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
박근혜 정권 하에서 법과 공권력의 부패가 심각하다. 단지 돈을 받고 독직을 저질러야 부패가 아니다. 정신의 부패가 더 근본적이고 심각하다. 본래의 존재의미를 상실한 채 권력과 자본에 휘둘리는 게 부패다. 길 가는 삼척동자를 잡고 물어보자. 오늘날 대한민국 검찰과 경찰이 과연 법과 정의의 수호자라 할 수 있는지? 대한민국에 정의가 있는지? 검찰ㆍ경찰이 하는 말을 한 마디라도 마음 열고 믿을 수 있는지? 뻔한 소리를 늘어놓는 심경은 답답하다.
지난 6월 10일 저녁, 서울 종로구에 있는 직장 근처에서 후배를 만나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온 길이 다 경찰에 의해 꽉 막혀 ‘통행금지’ 돼 있었다. 왜 이러느냐고 경관에게 물으니, 청와대 주변에 집회ㆍ시위가 계획돼 있다 한다. 내가 걷고 있던 헌법재판소 부근은 청와대로부터 한참 떨어진 곳이고, 거기서 아무리 시위를 해봐야 청와대에 있는 사람들 귓등에도 들리지도 않을 텐데, 왜 골목길까지 다 막고 통행을 함부로 방해하냐 해도 아랑곳 않는다. 되레 중대장이나 간부로 보이는 자가 가방을 좀 보잔다. 무슨 법적 근거로 그런 소리를 하느냐니까 물러선다. 시민에게 불심검문 따위를 요청할 때 먼저 경관의 신분과 합당한 이유를 밝혀야 되는 거 아니냐고 하니까 비겁하게 의경들 뒤로 숨는다.
나중에 뉴스를 보니, 그날 저녁 광화문과 서울 삼청동 부근에서 6월항쟁 27주년 기념과 세월호 문제에 대한 대학생과 시민들의 시위가 있었다 한다. 주최측이 낸 60여곳 집회 허가 신청이 모조리 불허당했다 한다. 더 기막힌 것은 시위에 나온 사람들은 겨우 200~300명이었는데, 동원된 경찰 병력은 무려 6,400명이었다는 점이다. 이는 명백한 세금 낭비며 공권력의 낭비다. 그날 집시법 위반 등의 혐의로 60여명이 검거되고 2명이 구속됐다 한다. 화염병, 돌 따위를 든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200~300명의 비폭력 시위대로부터 6,400명의 경찰은 대체 무엇을 지키려 한 것인가. 공공의 안녕과 법질서인가? 아니면 청와대 사람들의 심기 또는 청와대에 대한 경찰 고위간부의 고과점수인가? 바로 이런 것이 공권력과 법의 부패일 것이다. 우리는 6월항쟁 이후 27년간 허송세월 한 거 아닌가.
경찰은 늘 차벽으로 합법적 집회장소를 봉쇄하고 길을 막아 과잉 대응한다. 2011년 헌법재판소는 경찰 차벽이 불법임을 판결한 바 있다. 그러나 아무런 집회가 없는 날에도 광화문과 안국동, 계동 등 중심가 주변에는 경찰버스가 줄줄이 주차해있다. 내뿜는 매연과 불법적 도로점거가 주는 피해가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매일 통행권과 생업활동을 방해받는다. 시민들은 버스ㆍ택시 정류장에 불법주차한 경찰버스를 피해 위험하게 승ㆍ하차한다. 이처럼 정치경찰은 헌법을 공공연히 위배하고 국민의 세금을 마구 낭비한다. 오로지 ‘정권 안보’나 ‘그분 심기’를 위해서다.
검찰이 유병언 일가와 구원파 신도들과 벌이고 있는 게임도 이와 유사한 것이라 본다. 물론 정치검찰은 경찰보다 더 고급스럽고 극악한 낭비와 부패를 저지른다. 국정원 선거조작이나 서울시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등 정치검찰은 불신과 조작을 상식화했다.
공권력의 사용 방법이 사회정의의 척도일 테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에게 모호하고 감상적인 정의나 ‘인간의 얼굴’ 따위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법 집행의 공정함과 엄격함을, 그야말로 상식과 법리에 따라 행동하고 판단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최소한’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이 정권 하의 공권력은 존경은 커녕 신뢰를 완전히 상실했다. 한 무리의 정치검찰과 정치경찰이 전체 조직을 욕보이는 상태는 중단돼야 한다.
검찰과 경찰은 정당성을 상실해가는 정권이 아니라 사회 전체와 다수 국민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 시민은 정치검찰과 정치경찰을, 그리고 그 배후를 증오한다. 다만 다칠까봐 피하고 더러워서 움츠릴 뿐이다. 그런 상태를 면종복배(面從腹背)라 한다. 아마 젊고 합리적인 검찰과 경찰 공무원들 중에도 마음속에서는 현 정권에 대해 ‘불복종’ ‘비협력’하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