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원고 졸업생 4명 진도 실종자 가족들 찾아
같이 점심 먹으며 묵묵히 자리 지켜
"내 부모같은 분들 도와드릴 일 찾을게요"
16일 오후 전남 진도 팽목항 빨간 등대 옆. 박영인(16)군 어머니가 아들 축구화를 묶어놓은 끈 틈에서 묵주를 발견했다. 이름 모를 수녀님이 어느 날 놓고 가셨다는 걸 주변 사람들에게 들었다. 어머니는 묵주를 매만지고는 말문을 열었다. “영인아, 속 좀 그만 썩이고 나와 이제….” 어머니의 등 뒤엔 영인군의 학교 선배들이 두 손을 포갠 채 침통한 표정으로 바닷바람을 맞았다.
세월호 침몰 참사 두 달을 맞은 이날 안산 단원고 졸업생들이 진도를 찾았다. 1기 졸업생 총동문회장 유모(25)씨는 “내 부모님과 같은 분들의 아픔을 잊지 않으려 진도에 내려왔다. 후배 어머니 아버지들도 우리를 자식처럼 여겨 주셨다”며“후배들이 아직 차디찬 바다에 있다 생각하니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이런 뜻이 모여 졸업생 4명이 이날 오전 7시 안산에서 만나 진도행 버스에 올랐다.
졸업생들은 8일째 시신 수습 소식이 없어 절망에 빠져있는 후배들의 부모 곁을 묵묵히 지켰다. 할 수 있는 건 부모들의 외로움이라도 더는 것밖에 없다고 했다. 이들은 실내체육관에서 후배들의 부모와 함께 점심을 먹은 뒤 인근 시장에 나가 자두를 사왔다. 2기 졸업생 이모(23)씨는 “수박과 참외는 현장에 있다고 들어 다른 과일을 골랐다”고 말했다.
이들은 후배 어머니들을 따라 팽목항에 들러 후배들이 하루 빨리 나오기를 기도했다. “현철아, 영인이 손잡고 빨리 와. 집에 가자.” 남현철(17)군 어머니가 방파제 난간에 양 손을 짚고 바다를 향해 몸을 기울여 한껏 외칠 때 현철군 선배들은 바다를 향해 묵념했다. 졸업생들은 카메라에 찍히기 싫어하는 어머니들을 배려해 앞서 걸으며 가려주기도 했다. 졸업생 이모씨는 “이번 참사로 친동생을 잃은 동문들도 있기에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후배 부모님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일을 찾아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방파제에서 나온 이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실종자 가족들은 자식이 다닌 학교 선배들의 발길에 고마움을 표했다. 현철군 어머니는 “(졸업생들이) 내 새끼 같고 기특하죠. 시간 내기도 힘들었을 텐데.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죠”라고 말했다. 허다윤양 아버지 홍환(50)씨도 “(서로) 얼굴을 알고 모르고를 떠나 다들 바쁜데도 우리의 아픔을 헤아려 내려 왔다는 게 고맙죠”라고 말했다. 황지현양 어머니 신명섭(49)씨는 “친한 언니 애들도 다 단원고 졸업생들이라 얘들도 조카 같아. 애들 생각도 나고”라며 눈물을 닦았다.
진도=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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