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늘한 주검이 들어오는 전남 진도 팽목항에도 가끔 웃음꽃이 필 때가 있다. 자원봉사자 서은혜(19)씨는 이달 7일 가족들에게 오목 대결을 제안했다가 지는 바람에 얼굴이 온통 기괴한 낙서투성이가 됐다. 이긴 사람이 진 사람의 얼굴에 낙서를 하기로 정한 룰 때문이었다. 가족들이 우스꽝스러운 서씨의 얼굴을 보고 크게 웃자 근처 해경이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을 정도였다.
15일 진도에서 두 달째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서씨는 “한번도 웃지 않던 아버지들이 크게 한번 웃는 모습을 보면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런 서씨지만 행여 실종자 가족들에게 누가 될까 봐 인터뷰 승락 까지 닷새나 주저했다.
서씨는 사고 첫날부터 진도 팽목항과 실내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들과 부대껴 지내고 있다. 안산 상록구에 사는 서씨는 고교 졸업 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를 두고 “SNS에서 떠도는 세월호 정보는 괴소문”이란 주위 얘기에 직접 현장을 확인하러 사고 당일 진도행 버스에 올랐다.
서씨는 천막 하나 없던 팽목항 부둣가에서 첫날을 보냈다. 그는 한 실종자 가족에게 자신의 담요를 건네고, 자신은 몸을 녹이려 쓰레기를 주웠다고 했다. 서씨는 늘 담배꽁초를 줍는다. 그는 “그 담배를 피우며 속을 태웠을 가족들이 떠올라 울컥해 담배꽁초를 치워버린다”고 했다.
그렇게 두 달째. 서씨는 밥짓기, 반찬 배식, 구호물품정리, 이불 털기, 쓰레기 줍기, 분리수거 등 온갖 일을 척척 해내는 살림꾼이다.
가족들을 꼼꼼히 챙기는 것도 그의 몫이다. 서씨는 지난 10일 굴비를 구운 뒤 “민지 어머니 식사 안 하셨을 텐데 모셔 올게요”라며 임시 주택으로 달려 갔다. 평소 이런 서씨를 지켜 본 아버지들은 그를 “딸”이라고 부른다. 지난달 17일 아들 조모(17)군의 시신을 찾은 아버지(50)는 “진도에서 아들을 잃었지만 딸을 얻었다”고 말했다. 서씨의 사진도 지갑에 넣고 다닌다. 서씨는 “진도에서 아버지가 일곱 분 정도 새로 생겼다”고 말했다.
서씨는 이달 8일 고 유니나(28) 단원고 교사의 아버지가 딸의 시신을 확인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께서 어쩔 줄 몰라 자갈밭에서 발을 구르던 모습에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했다.
서씨도 이번 참사로 안산 동네 친구들의 동생 7명을 잃었다. 안중근(17)군을 끝으로 친구 동생들은 모두 시신으로 뭍에 나왔지만, 그는 진도에 남았다. 실종자 가족들이 눈에 밟혀서다.
서씨는 이날 엿새째 108배를 올렸다. 실종자 12명이 가족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서씨는 절이 끝난 뒤 곧장 설거지를 하러 실내체육관 급식소 주방으로 들어갔다.
진도=손현성기자 hshs@hk.co.kr
양진하기자 realh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