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결선투표율 52% 카르자이 정권 견제하던 압둘라 경제통 가니보다 우세 전망 내달 22일 최종 결과 나와
미국과 안보협정 전망은 유사시 공동전선 큰 틀 합의 미군 형사관할권 등 조율 중 두 후보 모두 "당선되면 즉각체결" 탈레반과 관계 설정도 과제로
14일 아프가니스탄 북서부 도시 헤라트의 한 투표소 앞. 이날 실시된 대통령 결선 투표에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하루 종일 유권자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탈레반 정권 시절 탄압 받아 참여가 저조했던 여성들도 빠지지 않았다.
공무원인 굴람 바후딘(50)은 “젊었을 땐 전쟁 때문에 거리에 발을 들여놓기 어려울 정도로 위험했지만 지금은 투표할 수 있어서 우리를 이끌 지도자를 뽑았다”며 투표의 징표인 잉크 묻은 손가락을 보여줬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아프간은 유권자 확인란에 자신의 손가락에 잉크를 묻혀 지장을 찍는다.
카르자이 정권 각료 출신 대결
미군 철군을 앞두고 국제사회의 큰 주목을 받은 아프간 대선 결선투표가 이날 오전 7시 전국 6,300여개 투표소에서 일제히 시작돼 오후 4시 종료됐다. 아흐마드 유수프 누리스타니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유권자 1,350만명 중 700만명(52%) 이상이 참가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며 “남성 유권자의 62%, 여성의 38%가 참여한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이번 선거는 탈레반의 방해 공격과 위협 속에서도 비교적 순조롭게 치러졌다는 평가가 아프간 안팎에서 나왔다. 무하마드 우마르 다우드자이 내무장관은 “투표소를 노린 탈레반의 공격이 전국적으로 150차례 자행돼 군인 15명, 민간인 20명, 경찰관 11명이 숨지고 군인과 시민 100여명이 부상당했지만 전반적으로 평화롭게 진행됐다”고 말했다.
결선투표는 카르자이 정권을 견제해온 압둘라 압둘라 전 외무장관과 국제적 경험이 풍부한 아슈라프 가니 전 재무장관의 대결이었다.
압둘라 후보는 아프간 최대 종족인 파슈툰족 아버지와 제2 민족인 타지크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소련 침공(1979~89년) 당시 맞서 싸운 무장 게릴라조직 ‘무자헤딘’에 몸담았고, 1990년대 집권한 탈레반에 대항하기 위해 7개 부족이 결성한 연합세력 ‘북부동맹’에서 활동했다. 이런 출신 배경과 이력 덕분에 타지크가 주도하는 과거 북부동맹 지역뿐만 아니라 파슈툰 지역에서도 광범위한 지지를 받아 지난 4월 1차 투표에서 45.0%를 득표해 1위를 차지했다. 그는 하미드 카르자이 과도정부 초기 외무장관으로 중용됐지만 2005년 사임하고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다 2009년 대선에 출마해 카르자이와 대결했다.
최종 결과는 한 달여 뒤 발표
파슈툰 출신으로 1차 투표에서 2위(득표율 31.56%)에 올랐던 가니 전 장관은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80년대 미국에서 유학하고, 10여년간 세계은행과 유엔 등에서 근무해 국제적인 감각을 보유했다. 2001년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2002년 7월부터 2년여 간 재무장관으로 국가재정을 관할하고 경제회복을 이끌어 실무 역량도 뛰어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인적 네트워크, 온건한 성향도 장점이다. 반면 오랜 외국 생활 끝에 2002년 재무장관으로 국내에 복귀한 이력 때문에 “소련 침공과 탈레반 정권 등장으로 어려웠던 암흑기에 해외에서 안락한 생활을 영위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결선투표는 잠정 결과가 7월 초에 공표되기 때문에 현재로는 승자를 확언하기 어렵다. 다만 판세는 1차 투표에서 3위(득표율 11.37%)를 차지한 무소속의 잘마이 라술 등 탈락 후보 3명이 지지를 선언한 압둘라의 우세가 점쳐진다. 그러나 라술 후보의 러닝메이트였던 타지크계의 아흐마드 지하 마수드 후보가 압둘라 후보 지지를 거부하고, 가니 후보 지지를 선언한데다 순수 파슈툰 출신인 가니 후보가 인구의 42%를 차지하는 파슈툰족의 표심을 얼마나 사로잡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외교부 함정한 서남아태평양과장은 “아프간은 공약에 따라 투표하는 정책 대결 구도 보다는 종족에 따라 투표하는 경향이 짙다”며 “종족 대결 구도로 갈 경우 파슈툰족의 지지를 얻는 가니가 유리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압둘라가 유리할 것 같다”고 말했다.
산악지대에서 당나귀로 투표함을 옮기는 경우가 많아 결선투표 최종 결과는 한 달여 후인 7월 22일 발표된다. 이마저도 1차 투표처럼 부정행위가 많을 경우 더 늦춰질 수 있다.
평화적 정권이양과 치안 유지가 과제
누가 당선되든 아프간은 탈레반 축출 이후 13년 동안 정권을 잡아온 카르자이를 대체할 첫 민주적 정권 이양을 눈앞에 두고 있다. 결선투표까지 비교적 원만했지만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마음을 놓기엔 아직 이르다. 탈레반 세력이 조직적으로 방해해 개표 및 득표율 집계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거나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면 정국이 혼란해질 수 있다. 그래서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아 양측 모두 투표 결과에 승복하고, 차기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기초로 해 정통성을 이어 받은 정부가 출범하고, 국제사회에서도 인정받아야 안정적인 사회 기반을 닦을 여건이 마련된다.
새로 선출되는 대통령은 책임도 막중하다. 미군은 일부 남지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중심으로 한 국제안보지원군(ISAF)의 사실상 올해 말 철수 이후 치안 유지와 경제성장 등 산적한 과제를 하나씩 풀어나가며 국가의 역량을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13년간 아프간 내에서 치안ㆍ경제ㆍ행정 지원을 담당해왔던 국제사회의 도움에서 벗어나 사실상 자립해야 한다는 의미다. 종족 중심의 중첩된 아프간 정치공동체를 설득해 타협과 발전을 이끌어갈 리더십이 필요하게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초 올 연말로 예정됐던 미군과 나토군 철수를 앞두고 차일피일 협상이 미뤄지고 있는 ‘미국ㆍ아프간 양자 안보협정(BSA)’ 체결 문제다. 호시탐탐 정권 탈환을 노리는 탈레반 세력의 위협 속에서 아프간이 치안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문제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BSA는 미군과 나토군 철수 이후 아프간 치안 유지 및 안정화를 위한 미군 주둔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장치다. BSA는 미군의 임무를 평상시 일체의 공격적 전투행위를 배제하되 아프간 군경에 대한 훈련ㆍ자문ㆍ지원 업무에 한정하고, 아프간이 외부의 위협으로 안보 위기에 처했을 경우 미국이 동맹국 차원에서 공동 전선에 나서는 게 골자다. 양측은 지난해 말 큰 틀에서 이 같은 내용에 합의했지만 ▦미군의 형사 관할권 ▦동맹국 지위 부여 여부 ▦아프간 국민 피해 방지 서약 ▦미군의 자의적 병력 운용 금지 등의 쟁점에 완전히 합의를 보지 못한 상태다.
아프간 국민들도 대체로 BSA를 지지하고, 정부 공식기구와는 별도로 영향력을 행사해온 최고 족장회의이자 의사결정기구 ‘로야 지르가’도 BSA를 추인했지만 하미드 카르자이 현 대통령이 탈레반의 눈치를 보며 BSA 서명을 미루고 있다. 결정을 차기 대통령에게 미뤄 책임을 피하려는 의도로도 보인다. 압둘라와 가니 두 후보는 모두 “당선되면 즉각 협상에 나서 BSA를 체결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압둘라는 가니 보다 BSA 체결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카르자이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지난달 철군을 2년 연장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프간에 주둔하는 3만2,000명 중 연말까지 아프간 치안 병력 훈련과 대테러전을 지원하는 9,800명 정도만 남기고 철수하고, 2016년 말에는 미대사관 경비 병력 정도만 남기고 전면 철수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압둘라든 가니든 이런 상황 변화에 대처해야 한다는 과제도 안고 있다.
탈레반에 당근과 채찍 정책
탈레반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는지도 중요한 문제다. 두 후보 모두 탈레반이 지향하는 궁극적 목표인 이슬람 국가 건설은 강력히 반대하면서도 아프간 안정화의 최대 위협 세력인 탈레반을 궤멸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인식도 갖고 있다. 따라서 이들을 어떤 방식으로 포용하거나 또는 배제할지를 두고 고민 중이다. 두 후보는 선거 운동 과정에서 일부 핵심 폭력 탈레반은 격멸하되, 생계가 어려워 탈레반에 지원할 수 밖에 없었던 외곽 조직원들은 최대한 지원해 사회안전망으로 흡수하고 평화로운 시민으로 탈바꿈시키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
집권층과 부유층의 부정부패, 파슈툰 대 비파슈툰의 해묵은 종족 분열 및 갈등, 외국 원조금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빈약한 경제 기반, 서민층의 빈곤 문제 등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함정한 과장은 “아프간은 에너지자원과 광물자원이 풍부해 미래가 어둡지는 않지만 아직 그런 얘기를 할 단계는 아니다”며 “부정부패가 해소되고 사회가 안정돼야 다국적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개발에 나서 도약을 꿈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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