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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된 빛

입력
2014.06.15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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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임스 의자'. 캔버스에 아크릴, 116 x 78 cm. 노화랑 제공
‘하얀 임스 의자'. 캔버스에 아크릴, 116 x 78 cm. 노화랑 제공

작년 공황장애와 싸우며

희망의 빛 화폭에 담아

붓 대신 손으로 작업

화면에 온기 불어넣어

파란 하늘 아래 붉은 감이 달린 감나무 그림으로 유명한 오치균(58)은 인기 작가다. 지난해 국내 미술품 경매에서 생존한 한국 화가로는 이우환 김창열 김종학에 이어 네 번째로 작품이 많이 팔렸다.

이 잘 나가던 화가는 지난해 위기를 겪었다. 갑자기 찾아온 공황장애로 무릎 아래가 마비되면서 석달 가량 꼼짝없이 집안에 갇혀 지냈다. 영원히 움직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싸우며 재활에 힘쓰는 동안 그에게 힘을 준 것은 어두운 작업실을 밝히는 작은 등불과 커튼을 헤집고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 한 조각이었다. 거기서 간절한 소망을 봤다고 한다. 다시 기운을 낸 그는 지난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빛’ 시리즈를 시작했다. 그 빛들이 공간과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또다른 풍경을 담은 그림이다.

서울 노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오치균, 빛’ 초대전은 신작 ‘빛’ 시리즈를 소개한다.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감나무 그림과 감이 있는 정물화도 몇 점 포함됐다.

‘빛’ 시리즈에서 빛은 조연이 아니라 주인공이다. 광원 자체를 화면에 끌어들였다. 작은 램프의 인공조명이 만들어내는 빛과 그림자의 대비는 어두운 실내 공간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창으로 들어온 햇빛 한 줄기로 주변 사물을 드러내는 방식은 화면 어두운 구석에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신발 한 켤레 그림에서 잘 드러난다. 신발보다 신발 옆으로 떨어진 햇빛이 거기에 신발이 있다고 말해준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촛불 그림은 한 줄기 바람에도 흔들리는 연약한 불꽃을 그린 것이지만 절대로 꺼지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그건 생명의 빛이고 소망의 상징이다. 그동안 자연스럽게 빛이 보이는 그림을 그려왔지만,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빛을 그림에 끌어들였다.”

빛은 그의 작업에서 줄곧 중요한 요소였다. 미국에서 유학하며 어렵게 살던 1980년대 후반에는 TV의 번쩍거리는 불빛만 있는 어두운 방에서 옷을 벗고 온갖 자세로 사진을 찍은 다음 사진 속 알몸을 그려 울화를 터뜨렸다. 빛과 어둠으로 소외와 고독을 드러내는 작업은 이후 90년대 중반 뉴욕과 서울의 풍경으로 옮겨 갔다.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미국 산타페와 강원도 사북을 그린 작품에서는 희미한 빛 속에 숨어 있던 아름다운 색들이 화면으로 올라온다.

그는 붓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물감을 찍어 발라서 그림을 그려 왔다. 이번 빛 시리즈도 매끄러운 붓터치 대신 우툴두툴 두터운 질감으로 화면에 온기를 불어 넣고 있다. 전시는 25일까지 한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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