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로 이를 좀 확인해 봐.” 해가 질 무렵 K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낮게 속삭였다. 아, 이런. 듣자마자 입에 힘이 들어갔다. 한참을 웃어젖힌 후라 표정을 수습하기가 어려웠다. 서둘러 화장실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앞니에 초록색 이물질이 붙어 있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필 낮부터 열린 작은 문학행사에 참여해 많은 사람들과 웃고 떠든 터였다. 언제부터 이 상태였을까. 식사할 틈이 없어 점심 저녁을 각각 김밥 한 줄로 때웠으니 아마도 시금치 찌꺼기였을 것이다. 설마, 점심때부터? 그렇게 생각하니 얼굴이 한층 더 뜨거워졌다. 한 나절 내내 왜 한 번도 거울에 비춰 보지 않았을까 후회가 밀려왔고, 그때껏 누구도 언질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속상했다. 하긴, 누군가가 고춧가루가 낀 잇몸으로 환하게 웃고 있거나 바지 지퍼가 열린 양복을 입고 있는 걸 볼 때 나도 늘 주저하긴 했다. 알려주는 게 낫기는 할 텐데, 상대를 노골적으로 민망하게 할까봐 또한 적잖이 신경이 쓰이니까. 모른 척 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끝까지 ‘모르고’ 지나가면 차라리 속 편한 게 아닐까. 그런데 막상 닥치고 보니, K조차 귀띔해주지 않았다면 어쩔 뻔 했나 싶다. 집에 돌아와 나의 칠칠치 못한 하루를 뒤늦게 발견했다면, ‘다 알면서 모른 척 한 거야?’ 하는 낯 뜨거운 창피함에 ‘아무도 몰랐겠지?’ 하는 일말의 헛된 기대가 뒤섞여 심란한 밤이 싱숭생숭 길게 이어졌을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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