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대지진 다룬 ‘배수의 고도’
극히 정돈된 무대지만 시종 연극적 활력으로 넘쳐 있다. 질박한 인간미에서 일순 냉혹한 정치판으로 변하기가 여반장(如反掌), 그야말로 손바닥 뒤집듯 한다. 두산아트센터의 ‘배수(背水)의 고도(孤島)’는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라는 일본의 참극을 연극적으로 재현한다. 한갓진 해변 마을에서 순식간에 장관의 집무실로 변신하는 시각적 변신의 무대에는 사실주의와 만화적 상상력이라는 양립하기 힘든 두 개의 칼이 번득인다.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의 기대는 배반당하지 않는다. 평면 모니터를 잇달아 붙여 뒷벽을 가득 채운 영상이 극장 공간을 순식간에 딴 곳으로 차원 이동시킨다. 젖소가 한갓지게 풀을 뜯던 곳이 순식간에 대참사의 현장 혹은 어두운 도시의 거리로 변한다. 극장이 보유한 하드 웨어 덕이기도 하지만 배우들의 치밀한 앙상블과 맞물리지 않고서야 애초에 공염불이다.
인간적인 마을 주민, 냉혹한 정치ㆍ경제인의 모습을 비정하리만치 담담히 대비해 보여준다. 어찌 보면 기막힌 사건조차 거대한 비극 속에서 에피소드마냥 처리되는 것을 보며 객석은 삶의 아이러니를 느낄 법 하다. 재난을 피해 옷가지처럼 처박혀 있던 곳에서 육체의 유혹을 못 이긴 남녀가 뜻하지 않게 관계를 하고 그 수습을 정부의 재난 보조금으로 충당한다는 이야기가 에피소드처럼 끼어든다.
이런 복잡다단한, 극히 예외적인 사건들의 원초적 흡인력을 이 연극은 다양한 시선으로 처리한다. 연극은 수시로 등장해 배우를 집요하게 따라붙는 비디오 카메라와, 무대 위의 인물들을 무대 곳곳에 숨어 기웃거리며 보는 익명의 시선과, 전면 벽에 가득한 모니터 동영상을 보여주며 객석에 되묻는 듯 하다. 현대에 이르러 타인의 시선은 관음증적 상황이 아니냐며.
마침 터진 세월호의 비극이 대사에 스며 있고, 인텔리들의 추악한 거래상이 만화 보듯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연출가 김재엽이 일본의 원작자 나카르추 아키히토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 끝에 이만치 한국의 이야기로 변했다. 무대 뒷면을 비스듬하게 설치, 평소보다 길어진 후면이 주는 풍성한 공간감이 이야기를 더욱 역동적으로 만든다. 7월 5일까지 두산아트센터Space111.
장병욱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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