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권력이다. 단죄는 법원 몫이지만 그 대상을 검찰이 추린다. 사람을 잡아 가둘 수도 있다. 그러나 권력은 권력끼리 뭉친다. 심판 대상과 짜고 위임자(국민)를 소외시키는 이유.
“검찰 꼴이 말이 아니다. 소환에 불응하고 잠적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 장남 대균씨를 현상 수배한지 13일로 23일째. 검찰 검거전담반만 110여명, 전국 경찰서마다 편성된 검거팀을 합하면 무려 2,500여명이 투입됐지만, 유씨 부자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 검찰의 무능함보다 더 심각한 것은 시종 청와대 눈치를 살피며 우왕좌왕하는 태도다. “유씨를 조속히 검거하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불호령이 떨어지면 전담반 인력 늘리기에 바빴고, “이렇게까지 못 잡는 건 말이 안 된다”는 호된 질책을 받고는 11, 12일 이틀간 구원파 근거지인 경기 안성시 금수원 2차 압수수색에 나섰다. (…) 검찰은 6ㆍ4지방선거가 끝나자 1년 가까이 뭉개고 있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사건을 종결하며 여당 인사들에게 대거 면죄부를 줬다. 국가기밀을 빼내 선거에 이용한 중대 범죄에 대해 당사자들의 어설픈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끼워 맞추기식 법 적용을 한 걸 보면 애당초 실체적 진실을 밝히려는 의지가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 이쯤 해서 김진태 검찰총장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검찰의 모습이 6개월 전 취임 당시 천명한 ‘바른 검찰’ ‘당당한 검찰’ ‘겸허한 검찰’ 맞는가.”
-김진태 검찰총장, 靑만 바라보나(한국일보 ‘메아리’ㆍ이희정 논설위원) ☞ 전문 보기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뮈는 ‘시시포스의 신화’를 인간이 처한 실존적 본질의 메타포로 읽었다. 희망 없는 항구적 노동과 무익을 알면서도 바위를 굴려야 하는 인간의 운명이란! 요즘 검찰 돌아가는 걸 보면 ‘시시포스의 신화’가 떠오른다. 지난 몇 년간 검찰개혁이니 뭐니 요란하게 떠들어댔지만 달라진 게 무엇이란 말인가. 여론이 들끓으면 잠깐 바뀌는가 싶다가 이내 바닥으로 굴러떨어진다. 한국 사회에서 검찰의 존재는 하나의 형벌처럼 느껴진다. 개선의 여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절망적인 형벌 말이다. 며칠 전 검찰이 발표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유출 사건 수사 결과는 최근 몇 년의 검찰개혁 시도가 말짱 도루묵임을 보여준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 측이 국가 기밀인 회의록을 불법으로 빼내 선거에 조직적으로 이용한 사실이 확인됐다. (…) 집권당이 선거에서 이기겠다고 정상간 회담 내용을 불법으로 빼돌려 왜곡 송출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 죄상이 이런데도 검찰은 정문헌 의원 한 명만 벌금 500만원에 약식 기소하고 다른 관련자는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 불법 선거를 단죄해야 할 공안검찰이 불법 선거를 용인한 꼴이 됐다. (…) 검찰은 ‘공익의 대변자’이기를 포기하고 정부와 집권층의 사익을 대변했던 이명박 정부 때의 ‘정치검찰’로 완연히 돌아갔다. (…) 전임 채동욱 총장 때 국정원의 선거 개입 사건을 수사하며 정상화의 길로 가는가 싶던 검찰은 김진태 총장이 들어선 뒤 ‘시시포스의 도로’처럼 다시 맨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정통 칼잡이’라는 김 총장의 아우라는 정치검찰의 민낯을 분식하는 그럴듯한 화장발이 됐고, 그 화사한 겉치레 안에서 검사들은 자의식도, 고뇌도 없이 오늘도 평온하다.”
-검찰개혁 시즌2(경향신문 ‘기자칼럼’ㆍ정제혁 사회부 기자) ☞ 전문 보기
“한자어 검(檢)과 검(劍)의 유사성 때문이겠지만 우리나라 검찰과 관련해선 유난히 칼이 포함된 표현이 많다. ‘사정 칼날을 휘두른다’거나 ‘메스를 들이댔다’는 말에서는 거악을 베거나 범죄의 원천을 도려내는 검찰 본연의 사명이 잘 표현돼 있다. (…) 지금 우리 검찰이 자기 몸을 벨 위기에 처해 있다. 제 몸 상하는 줄 모르고 양날의 검을 휘두르고 있는 검찰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2년 전 나라를 둘로 쪼개 놓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유출 사건 수사가 마무리됐지만 터무니없는 결과물 때문에 검찰에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오죽하면 보수언론조차도 엉터리 수사라고 질타하겠는가. (…) 검찰은 운명적으로 칼잡이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다. 국민들은 직접 칼을 잡는 대신 그들의 손을 빌려 모든 악을 사회로부터 격리하고자 한다. (…) 권력의 눈치를 보며 검을 만지작거리는 것은 국민들의 소명을 저버리는 일이다. 국민들은 검찰 손에 쥐여 준 검을 회수해야 한다고 아우성칠 것이다. 검(劍) 없는 검(檢), 상상하기도 어렵다.”
-양날의 검(서울신문 ‘서울광장’ㆍ박홍환 논설위원) ☞ 전문 보기
분명 나아졌다. 나라 살림 말이다. 그런데 왜 빈곤층은 커지는가. 뭉친 곳에 들러붙는 부(富)의 속성 탓만은 아니다. 터야 할 길은 분노 분출구가 아닌 부를 흘려 보낼 수로(水路).
“우리 사회 상층부의 병폐가 무질서하게 폭발하는 요즘이다. 마치 팝콘 냄비 같다. 다음번에 어떤 것이 터질지 모른다. 터질 순서는 알 수 없다. 아직 터지지 않은 것도 있다. 어디서 무슨 일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냄비 속 옥수수 알갱이들은 모두가 열(熱)에 노출돼 있어 언젠가는 터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터질 때마다 그 피해가 아래쪽 국민에게 번진다는 사실이다. (…) 전에는 판자촌, 쪽방촌의 빈곤층이 고민거리였다면 새로운 빈곤층은 우리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아 있다. 이런 빈곤층 숫자가 늘면서 거대한 하부 계층을 형성하고 있다. 그 숫자는 1000만명을 쉽게 넘고 넉넉하게 잡으면 5000만명 가운데 거의 절반에 육박한다. 비정규직의 평균 임금은 월 146만원 안팎이다. 국가가 정한 최저생계비 163만원보다 낮다. 최저 생계점 이하에서 사는 591만명이 다달이 3억원씩 수입을 올리는 전직 법관의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겠는가. (…) 이들은 자신의 울분을 풀어줄 정치를 갈망하고 분노를 키우는 정치를 지지한다. (…) 성공한 지도자는 이것저것 혼재(混在)돼 있는 민심의 도가니 안에서 부글부글 끓는 유독가스를 적절하게 잘 분출시켜 주고, 때로는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민심을 이끌어가는 흡인력을 발휘한다.”
-民心을 잡든가, 民心을 끌고 가든가(조선일보 기명 칼럼ㆍ송희영 주필) ☞ 전문 보기
“한 목회자가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단원고 아이들에게 “가난한 집 애들이 설악산이나 경주 불국사로 수학여행을 가면 될 일이지, 왜 배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다 이런 사단이 빚어졌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배가 가라앉는 동안 아이들을 한명도 구조해내지 못하는 정부를 향해 울분을 토하던 학부모가 떠오른다. 강남 학교 애들이라면 이렇듯 보고만 있었을까요? 무능한 구조작업에 화가 나서 나도 그렇게 외친 적이 있다. 그래도 설마 목숨까지 차별하지는 않을 것이라 믿었다. 이렇듯 가난을 무능으로 가난하다고 업신여기고 얕잡아볼 줄은 몰랐다. (…) 종종 아이들에게 화풀이를 하던 어른들의 목소리가 담장을 넘던 어릴 적 그 동네 전경이 그려졌다. 가난했지만 부지런했다. 우직하게 일만 했다. 살림이 넉넉지 않았지만 누구도 가난한 집이라고 손가락질하지 않았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면 얼마든지 가난은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가난한 집 아이들(한겨레 ‘삶의 창’ㆍ하성란 소설가) ☞ 전문 보기
“‘우리가 남이가’라고 뻔뻔히 외치며 ‘끼리끼리’ 해쳐먹고, 위로는 눈치만 보며 아래로는 권위만 휘두른 관료들, 자본의 탐욕에 눈 먼 아귀 같은 자들이 ‘손에 손 잡고’ 쌓아온 적폐가 주범이다. 시민들은 그걸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쇄신을 요구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뜬금없는 ‘국가개조론’이다. ‘국민, 국토, 주권’으로 이뤄진 국가는 멀쩡하다. 멀쩡하지 않은 건 그 사람들이다. 말로만 종복이라고 떠드는 자들이다. (…) 정작 개조해야 할 건 시민도 제도도 아니다. 대통령 자신부터 바뀌어야 하고, 관료사회와 탐욕적이고 천박한 자본의 횡포를 막는 방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게 진짜 개조의 핵심이다.”
-종복(從僕)을 개조하라!(한국일보 ‘토요에세이’ㆍ김경집 인문학자) ☞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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