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니파 계열 이슬람 무장단체 이라크ㆍ레반트 이슬람국가(ISIL)에 맞서 반대 종파(시아파) 지도자가 성전을 촉구하면서 시아파 청년 수 천명이 입대를 자원하고, 시아파 국가 이란이 국경을 넘어 ISIL 토벌에 나서는 등 이라크 사태가 국제 분쟁 성격의 종파간 내전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라크 시아파 지도자 알리 알 시스타니는 13일 시아파 성지 카르발라에서 열린 금요기도를 통해 “시아파 신도들은 수니파 테러리스트에 맞서 무기를 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AFP 등 외신에 따르면 시아파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스타니는 대변인을 통해 내놓은 성명에서 “이라크 정부군과 합류해 조국과 가족, 자신의 명예를 위해 희생한 사람은 순교자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고 지도자 주문에 따라 이날 바그다드 시내 이라크군 모병소에는 당장 수 천명의 시아파 청년들이 몰려들었다. 이에 따라 ISIL이 주도해온 전황은 두 종파간 극심한 유혈 충돌이 불가피한 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또 혼란 상황을 틈타 중앙정부와 관할권을 놓고 다투던 키르쿠크 지역을 장악한 쿠르드자치정부(KRG)가 세력을 더욱 확장한다면 이라크는 수니파와 시아파, 쿠르드족 지역으로 삼분될 수도 있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이란도 나섰다. 이란 혁명수비대 산하 정예부대 쿠드스(Quds) 2개 대대가 이라크 정부군을 지원해 ISIL이 장악했던 티크리트 지역의 85%를 되찾았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13일 전했다.
미국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13일 백악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라크 군대가 ISIL을 감당하지 못하는 게 분명해졌다”며 “미국은 이라크를 위한 추가 지원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군사적 도움은 줄 수 없다”며 3차 이라크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지상군 파견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걸 확실히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안보 분야 참모들이 논의를 거쳐 곧 비군사적 지원 방안을 내놓을 것이며, 이라크 지도자와 각 정파들도 이번 사태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라크에 대한 미국 지원은 이라크 정부군과 시아파 민병대에 대한 훈련이나 군수 지원을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지고, 최악의 경우에도 군사적 개입은 무인기(드론) 공습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영국을 방문 중인 존 케리 미 국무장관도 “이번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분열된 이라크 각 정파가 단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ISIL이 이끄는 반군은 12일 수도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90㎞ 떨어진 둘루이야 마을까지 진격했다. 10일 이라크 제2도시 모술, 11일에는 사담 후세인의 고향 티크리트를 장악한 여세를 몰아 남진 하루 만에 바그다드 턱밑에 다다른 것이다.
ISIL이 “바그다드 동쪽 디얄라주의 사디야, 자라우라 2개 도시 일부를 장악했다”(알자지라)는 보도도 나왔다. 바그다드로 진입하는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포위 작전을 펴는 것으로 보인다. ISIL 대변인은 “바그다드까지 진격해 해묵은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며 “시아파 성지인 남부의 카르발라와 나자프도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위협했다.
시아파인 누리 알말리키 총리는 반군에 대항하기 위해 의회에 비상사태 선포를 요청했으나 무산됐다. 비상사태를 선포하려면 재적의원(325명) 3분의 2(217명)가 찬성해야 하나 128명만 참석해 정족수 부족으로 부결됐기 때문이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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