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이민제도 도입된 후 중국인 발길 갈수록 늘어 은행들 전용 창구도 속속 외환은행 올해 3월 현재 중국인 원화 예금 2,608억 국내 외지인 투자도 증가 세계유산 환경 훼손에 곳곳 난개발 우려도 커져
제주도 노형동에 자리잡은 우리은행 신제주지점. 1층 입구에 들어서니 출입구가 2개로 나뉜다. 기존 은행업무를 보는 창구로 이어지는 입구 옆에 투명한 자동문으로 된 출입구가 2일 신설된 것. 문 옆에는 ‘중국고객 전용창구(中國顧客 全容窓口)’라고 한자로 쓰여 있다. 중국인 전용 창구가 조성되면서 입구까지 추가로 개설된 것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중국인들은 금융거래서 노출을 극도로 꺼리기 때문에 외부에서 전용창구로 이어지는 출입문을 별도로 만들어 만족도를 높였다”고 설명했다.
이 문으로 들어서면 대기할 필요도 없이 바로 투자상담 직원을 만날 수 있다. 이 직원은 중국어를 사용해 한국어 통역원을 대동하는 불편함도 사라졌다. 2011년 처음 제주를 찾았던 중국인 A씨도 이런 편리함에 반해 입출금식 통장을 개설한 후, 중국에서 5억원 규모를 이 통장으로 바로 송금 받았다. 우리은행 3곳의 제주지점에는 올해 4월 현재 중국인 원화 예금 규모는 138억원으로, 2년전(39억원)에 비해 3배 이상 급증했다.
청정지역 제주도가 인파로 북적이고 있다. 해마다 올레길을 찾는 1,000만 관광객뿐만 아니라 이주자까지 가세하면서 중부권을 제외한 유일한 인구유입 지자체로 꼽히고 있다. 여기에는 왕서방(중국인)이 몰려들면서 인기 투자처로 떠오른 것도 한 몫을 한다. 제주 투자가 자유로워지면서 단순 관광만이 아닌 부동산 구입에, 각종 투자까지 벌릴 정도로 큰 손으로 등장했다. 제주 주요 관광지에는 이젠 한국말보다 중국말이 더 들리는 것은 기본이고, 곳곳에 중국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설치될 정도로 왕서방 잡기에 혈안이 된 모습이다. 하지만 급작스런 인파에 난개발, 환경파괴, 교통정체 등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원희룡 제주지사 당선자가 “중국 투자를 질적인 수준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할 정도로 청정지역 제주는 우리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셈이다.
제주, 중국계 자본으로 ‘들썩’
최근 제주에는 높이 218m(63층)의 초고층 빌딩 개발 문제로 논란이 일고 있다. 중국 녹지그룹이 제주시 노형동 일대 2만3,301㎡ 부지에 숙박시설과 위락시설을 갖춘 드림타워 건설을 추진중인데, 환경단체에서 “주거환경 악화에 교통정체, 경관파괴 등을 초래할 수 있다”고 극심한 반대를 하고 있는 것. 제주도가 5월 건축설계 변경허가를 내줬으나 원 당선자 측은 행정절차를 되짚어보겠다며 사업 전면 재검토까지 검토중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제주에는 녹지그룹 외에도 백통그룹 등 중국의 4개 사업자가 대규모 개발사업을 진행중이고, 4개 사업자는 신규 투자를 준비하고 있을 정도로 중국인들의 투자붐이 일고 있다. 실제 지난해 중국인들이 매입한 제주땅도 3년전(4만9000㎡)과 비교하면 60배 넘게 늘어난 314만9,791㎡에 이른다. 공시지가로만 따지더라도 2,178억원 어치나 된다. 함영진 부동산114리서치센터장은 “2010년부터 제주도에 콘도 등 체류형 휴양시설에 5억원만 투자해도 거주자격이 주어지고 5년 후엔 영주권까지 받을 수 있는 투자이민제도가 도입되면서부터 중국인들의 토지 매입 등 투자가 급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인들의 제주도 투자가 활발해지면서 국내 은행 제주지점에도 거액의 ‘차이나 머니’가 속속들이 예치되고 있다. 외환은행의 경우 올 3월 현재 중국인 원화 예금 규모가 2,608억원을 기록, 2012년말(43억원)에 비해 60배 넘게 증가했다. 대부분 즉시 투자할 수 있는 대기성 자금으로, 부동산 등 투자뿐만 아니라 중국내 반부패ㆍ사치품 규제를 피해 들어온 예금도 있다는 게 은행 측 설명이다. 중국인 뭉칫돈이 유입되면서 은행들은 고객 유치를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우리은행뿐만 아니라 외환 농협 신한 등 주요 은행들은 제주지점에 중국어 전문 직원과 중국인 고객 전담점포를 개설하거나 준비중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중국어가 능통한 직원들로 전담팀을 별도로 배치해 원화예금, 해외송금 등 은행업무와 함께 부동산 구입, 투자이민 등 국내 투자에 대한 상담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인구 유입도… 커피숍만 급증
제주도 투자 열기는 인구 증가에 마중물이 되고 있다. 제주도 인구는 지난해 60만명을 넘었다. 귀농ㆍ귀촌 열풍으로 작년 한 해에만 1만2,000여명이 늘어 역대 최대 증가율을 기록했다. 자연스레 서울 등 외지인의 부동산 투자도 급증했다. 풍광 좋은 해변에 펜션이나 전원주택 용지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함 센터장은 “제주도는 연간 관광객이 1,000만명에 이르다 보니 수익성 부동산에 대한 수요가 높다”며 “풍광 좋은 해안가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두 배이상 오를 정도로 투자 과열 분위기까지 일고 있다”고 말했다.
단기간에 투자가 몰리면서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다국적기업 중국 암웨이 인센티브 관광단 1만7,000여명이 지난달부터 이달초까지 제주를 찾았는데, 제주도는 지역경제 파급효과가 8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각종 편의를 봐주다 문제가 되고 있다. 세계자연유산인 성산일출봉으로 오르는 계단에는 암웨이 관광단을 환영하는 깃발 수십기가 내걸렸고, 넓은 잔디광장에는 이들만 출입하도록 한 행사장이 마련됐다. 급기야 성산일출봉 바로 앞에 높이 6m에, 너비 20m규모로 ‘Amway’라는 영문로고 간판까지 지난달 30일 세워졌다. 이 곳은 문화재보호구역이라 시설물 설치시 문화재청의 허가가 필요하지만 도는 이런 행정절차 없이 암웨이 측에 설치를 허락해줬다. 도 관계자는 “암웨이 관광단에서 환영 간판이 필요하다고 갑자기 요청이 와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지 못했다”며 “이후 공문으로 보내 허가를 받으려 했으나 문화재청에서 불허해 4일 바로 철거했다”고 말했다.
과열과 공급 과잉 우려도 나온다. 관광객이 매년 급증하다 보니 숙박업소와 커피전문점 개설만 몰리고 있다. 숙박업소의 경우 2010년 109곳(1만2,942실)에 불과했으나 올해 1월말 현재 201곳(1만6,721실)에 달하고 있다. 커피전문점도 제주시에 올해 5월 현재 422개가 생겨 2010년(61개)에 비해 7배 가까이 증가했다. 전망 좋은 곳에는 대도시처럼 커피 프랜차이즈점이 독식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런 열풍은 땅값 상승까지 부추긴다. 한국은행의 지역경제보고서에 따르면 올 1분기 제주 토지가격은 지난해 말보다 0.93% 상승, 전국 평균 상승률(0.45%)보다 두 배나 높았다. 서귀포시의 경우 1.24%나 올라 세종시(1.31%)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상승률을 기록할 정도다. 홍영철 제주참여환경연대 대표는 “거대자본이 밀려오면서 제주가 점차 상업화 도시처럼 변해가고 있다”며 “관광 및 투자활성화 등 양적 팽창만 추구하지 말고 이젠 지역민과 귀촌ㆍ귀농인들이 공생하며 청정 제주를 가꿀 수 있도록 질적 팽창에도 신경 써야 할 시기가 왔다”고 말했다.
제주=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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