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답답하거나 갑갑하거나

입력
2014.06.13 20:00
0 0

역사관 문제로 사퇴 압력 받는 문창극 총리후보

겸손과 통합정신ㆍ보편타당 결여가 가장 큰 문제

눈이 좋지 않은 사람은 답답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안경을 쓰지만 잘 맞지 않으면 갑갑해 벗어버리고 싶어진다. 색깔과 형태가 얼굴과 어울리지 않거나 안경다리가 잘 맞지 않아 이물감이 느껴지는 경우는 더하다. 굳이 유행을 따라갈 일은 아니지만, 스타일과 디자인이 너무 낡은 안경은 누구나 기피하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눈은 더 나빠지고 가까운 것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세상을 더 잘 보기 위해 시각(視角)을 교정하거나 시점(視點)을 바꿀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다. 앞으로 눈이 좋아질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우니 시력을 잘 측정해 꼭 맞는 안경을 맞추는 수밖에 없다.

안대희 씨에 이어 문창극 씨가 새로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이후 이런 ‘안경’ 생각을 하게 됐다. 그가 지금 한국인들에게 맞는 안경인가 했더니 최초의 언론인, 첫 충북 출신이라는 장점이나 특징은 어느새 간곳없이 묻혀 버렸다. 그리고 국가 개조·적폐 일소의 능력과 의지 문제, 역사인식 문제, 통합정신의 문제로 논란과 자진 사퇴 요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역사인식이 도마에 오르면서 “총리감이 아니라 국민감도 안 된다”는 말도 나왔다.

동영상을 통해 널리 알려진 교회 특강에서 조선민족의 게으름과 단점을 폄하하고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대학 강의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의 사과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 것 등이 그의 역사관을 의심케 하는 내용이다. 국민성에 대한 것은 전후 맥락으로 볼 때 우리나라가 세계적 시운(時運)을 타고 융성 발전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강조하기 위해 인용하고 언급한 대목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군대위안부에 관한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더구나 그가 국민성 발언을 인용한 윤치호(1865~1945)는 전 생애 중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후반기의 친일 행각과 침묵 때문에 민족의 배척을 받아온 인물이다. 그가 일제 강점기의 선각이며 사회지도자였고 60년간 일기를 썼을 만큼 기록정신이 치열한 지식인이었던 것은 맞는다. 하지만 하필 그를 통해 우리의 문제점을 지적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이 점에서 문 후보자는 사려 깊다거나 보편타당한 사고를 한다고 보기 어렵다.

종교인의 신앙 간증 차원에서는 가능한 이야기이겠지만 식민지배나 남북 분단 등 만사가 하나님의 역사요 예비된 결정이라는 발언은 종교적 갈등까지 유발하고 있다. 더구나 강연 내용은 윤치호의 말인지 그의 말인지 애매해 보이기도 하고, 그의 말투는 총리 후보 지명을 받고 맨 처음 기자들에게 다짐한 ‘겸손’과도 거리가 멀다. 그가 오래 언론인으로 활동하는 동안 써온 칼럼이 극우 보수적이라거나 특정 문제에 적대적이거나 시각이 닫혀 있어 통합과 소통에 기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보다 이런 게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총리 후보자 인선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비서진 교체를 마쳤다. 장관을 거친 여성을 정무수석으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선도 눈에 띄지만, 그 결과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는 ‘박근혜 캠프’로 되돌아갔고, ‘김기춘과 친박들’의 한계를 넘기 어려워졌다. 친정체제 강화가 국정 운영에 긍정적인 작용을 하기 바랄 뿐이다.

그러나 어쨌든 문제는 결국 국무총리다. 문 후보자의 발언을 일본 언론매체들이 반기는 듯한 표정으로 크게 보도하고 나선 것은 우리 국민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 ‘일본 우익이 반기고 환영하는 국무총리’란 생각할 수도 없었던 일 아닌가.

악의적 왜곡 보도를 한 언론사에 대해 제소 방침을 밝힌 문 후보자는 청문회 준비를 하고 있다. 그를 총리로 맞을 것인가 여부로 여당 내에서도 의견이 갈려 있다. 청문회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많다. 그것은 논란의 시간이다. 문 후보자가 과연 청문회에 서서 국회와 국민을 납득시킬 수 있을까.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