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소설가
당신은 공룡이 멸종한 이유를 몇 가지나 아는가. 고생물학자 벤턴은 <대멸종>에서 1842년부터 1990년까지 공룡 멸종에 관한 100가지 이론을 소개했다. 여기엔 고생물학 데이터에 무지하거나 생물학의 기본원리를 무시한 채 자기 변론으로 일관하면서 문제 자체를 가벼운 놀이로 취급한 경우까지 포함됐다. 허수를 제외하면 검토할 이론은 서넛으로 압축되며, 폭넓은 화석답사와 치밀한 연구를 통해 한 가지 강력한 멸종 모델이 만들어졌다. 6,500만 년 전 지름 10㎞의 거대 운석이 지구와 충돌했다는 것이다. 이 충격으로 대기로 뿜어 나온 먼지가 지구를 에워싸고 햇빛을 1년 이상 차단한 결과 대량멸종이 일어났다. 벤턴은 공룡도 그때 사라진 동물들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탐정은 누구인가. 국적에 상관없이 탐정 이야기는 비슷하게 전개된다. 먼저 범죄가 발생하고 탐정은 단서들을 취합해 범인과 범죄 수법을 추리해 나간다. 수십 명이 수사선상에 오르지만 주범은 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탐정이 등장하는 추리소설 시리즈는 정의와 불의의 문제를 앎과 모름의 문제로 바꾼다. 범인을 밝혀내지 못하는 동안 그 사회는 불의로 가득 찬다. 범죄가 일어난 도시의 시민은 불안과 공포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다가 탐정이 범인과 그 수법을 알아내는 순간, 독자와 등장인물이 범죄에 관해 모르는 부분이 사라지는 순간, 정의는 실현되고 소설은 끝난다.
그러나 과연 이렇게 끝이 나도 될까. 10년 전 나는 연암 박지원이 이끄는 백탑파의 활약을 추리소설 시리즈로 발표한 적이 있다.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등 백탑파의 구성원은 추리소설의 등장인물로 적합했다. 그들은 사물을 뭉뚱그려 파악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으며, 취향에 따라 대상을 고른 후 사전까지 펴냈다. 관찰을 통해 민감하게 차이를 확인하는 일은 탐정이 갖출 기본덕목이다. 꽃에 미쳐 백화보(百花譜)라는 그림책을 만든 김덕형으로부터 백탑파 시리즈의 탐정 김진의 캐릭터를 뽑아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백탑파 시리즈를 하나씩 탈고할 때마다 기쁘다기보단 우울했다. 김진의 활약으로 진범을 붙잡았지만 세상이 올바름으로 완전히 돌아오진 않았던 것이다. 흉악범을 중벌에 처하고 사건이 일단락된 후에도 가난한 백성은 더 굶주렸고 권력을 쥔 세도가들은 여전히 떵떵거리며 불법을 일삼았다. 나는 거대한 벽 앞에 선 기분이었다. 탐정이 알아낸 사실만으론 범인의 뒷배를 봐주는 몸통까지 접근하기 어려웠다. 탐정은 앎과 모름의 경계선상에서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며 자신의 앎을 넓혀나갔지만, 그 정도 활약으론 국가의 혁신이 완성되거나 부정부패가 일소되진 않았다. 악전고투하던 내 앞에 갈림길이 나타났다. 범인만 잡으면 불의가 정의로 순식간에 바뀌는 오락물 시리즈로 갈 것인가 아니면 범인을 체포해도 또 다른 난관이 있음을 강조하며 오락물로부터 멀어질 것인가. 나는 후자를 택하고 잠시 백탑파 시리즈를 떠났다.
문득 탐정들의 표정을 살폈다. 드라마로 재창조된 셜록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백탑파 탐정 김진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도 그와 비슷했다. 그들은 왜 사건을 해결하고도 웃지 않는가. 늘 아무도 믿지 못하겠단 자세로 심드렁하게 구는가. 이 자책과 찐득찐득한 슬픔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무엇이고 모르는 것은 무엇인가. 팽목항을 가슴에 품은 기자들이 끈질기게 지금도 파고드는 중이다. 사고를 일으킨 책임만큼이나 구조에 실패한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 영화처럼 120분 안에 깔끔하게 끝나지 않더라도, 며칠 혹은 몇 달을 끌어도 탓하지 말자. 당장 처벌이 가능한 이들만 재판정에 세운다면, 우리는 평생 셜록의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진상 규명엔 시간제한이 없다.
밤새 읽고 흠모하던 명탐정은 남들이 포기할 때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탐정에겐 범인을 추리해 붙잡는 것 외에 다른 일상이 없고, 독자에겐 그 탐정을 격려하며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 외에 다른 일상이 없다. 우리의 일상을 시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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