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꼴이 말이 아니다. 소환에 불응하고 잠적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 장남 대균씨를 현상 수배한지 13일로 23일째. 검찰 검거전담반만 110여명, 전국 경찰서마다 편성된 검거팀을 합하면 무려 2,500여명이 투입됐지만, 유씨 부자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급기야 정부는 이날 전국적으로 임시반상회를 열었다. 1996년 동해안 무장간첩 침투 사건 이후 처음이란다. 앞서 유씨 부자의 밀항을 막는다며 육ㆍ해ㆍ공군까지 동원됐다.
한편의 블랙코미디 같은 상황이 빚어진 것은 전적으로 검찰의 무능 탓이다. 애당초 수사의 기본원칙을 무시한 토끼몰이식 수사로 유씨 일가의 일제 도피를 초래했고, 경찰에 전담시키거나 주도권을 줬어야 마땅할 검거작전에 직접 뛰어 들어 혼선을 빚고 엇박자를 냈다. 유씨의 과거 수감 당시 기록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키(165㎝→160㎝)와 신체적 특징(왼손 중지 끝이 휨→오른손 중지) 등을 뒤늦게 정정하는 촌극까지 빚었다.
검찰의 무능함보다 더 심각한 것은 시종 청와대 눈치를 살피며 우왕좌왕하는 태도다. “유씨를 조속히 검거하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불호령이 떨어지면 전담반 인력 늘리기에 바빴고, “이렇게까지 못 잡는 건 말이 안 된다”는 호된 질책을 받고는 11, 12일 이틀간 구원파 근거지인 경기 안성시 금수원 2차 압수수색에 나섰다. 1만여 명의 경찰력에 음파탐지기까지 동원하고도 허탕을 쳤고, 일부 수사관들이 압수수색이 한창 진행 중인 금수원 내 강당에서 낮잠을 자는 모습이 방송 카메라에 잡혀 빈축을 샀다.
검찰 수뇌부가 그렇듯 온 국민의 시선도 신출귀몰한 유씨 부자의 뒤꽁무니에만 박혀 있다고 착각한 걸까. 검찰은 6ㆍ4지방선거가 끝나자 1년 가까이 뭉개고 있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사건을 종결하며 여당 인사들에게 대거 면죄부를 줬다. 국가기밀을 빼내 선거에 이용한 중대 범죄에 대해 당사자들의 어설픈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끼워 맞추기식 법 적용을 한 걸 보면 애당초 실체적 진실을 밝히려는 의지가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시계를 거꾸로 더 돌리면 ‘정치 검찰’이란 오명을 다시 불러낸 사건들이 여럿이다. 검찰은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부지 헐값 매입 의혹에 대해 소환은커녕 단 한 차례의 서면조사도 없이 이 전 대통령을 무혐의 처분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과 관련한 개인정보 불법 조회 및 유출 사건에서도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를 건너 뛴 채 ‘정당한 직무 감찰’로 결론 내고 몇몇 ‘깃털’만 재판에 넘겼다. 사법체계를 뿌리째 뒤흔든 간첩 증거조작 사건에서도 박 대통령의 언급이 있고서야 겨우 겉핥기식 국가정보원 압수수색을 하고는 윗선 수사를 사실상 포기했고, 그나마 재판에 넘긴 국정원 직원들에게도 국보법보다 형량이 낮은 형법을 적용하는 아량을 베풀었다.
이쯤 해서 김진태 검찰총장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검찰의 모습이 6개월 전 취임 당시 천명한 ‘바른 검찰’ ‘당당한 검찰’ ‘겸허한 검찰’ 맞는가. 김 총장은 925단어 3,166자에 달하는 깨알 같은 취임사에서 많은 이야기를 쏟아 놓았지만, 대다수 국민이 가장 기대했던 것은 이 대목이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어떠한 시비도 불식시키겠다는 각오를 새로이 다집시다. 검찰은 어느 누구의 편도 아니며 오직 국민의 편입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검찰 구성원 모두의 결연한 의지가 있을 때 비로소 온전히 지켜질 수 있습니다.” 뒤이어 내놓은 “저 자신부터 어떠한 어려움도 마다하지 않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겠다”는 다짐을 과연 지키고 있는가.
참여연대와 민변은 12일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권력 앞에서 한없이 나약하고 편파적”인 검찰을 질타하며 김 총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굳이 그 요구에 말을 보태고 싶지는 않다. 스스로 빚은 무력감에 짓눌린 채 진퇴양난의 고통을 견뎌야 하는 지금의 처지가 중도사퇴보다 더 가혹한 형벌일지도 모른다.
이희정 논설위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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