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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와 범죄자의 공통점은 모든 걸 낙관적으로 본다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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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와 범죄자의 공통점은 모든 걸 낙관적으로 본다는 것이지"

입력
2014.06.13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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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의 기억 미셸 라공 지음ㆍ이재형 옮김 책세상 발행ㆍ756쪽ㆍ2만1,000원

“역사는 사기꾼이나 다름없는 배우들이 독점했고, 또 다른 사기꾼들에 의해 쓰이지.”

프랑스 소설가 미셸 라공(사진)의 장편소설 ‘패자의 기억’은 역사가 삭제한 한 시대의 주인공을 전기 형식으로 복원해낸 픽션이다. 시대의 주인공이라고 해서 실존인물이었다는 말은 아니다. 가난한 80대 노인이 돼 자신의 생애를 구술하고 있는 알프레드 바르텔르미는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이다.

아나키스트였던 알프레드는 레닌, 트로츠키, 고리키, 말로 같은 저명한 실존인물들의 친구, 동지, 적으로 1917년의 러시아 혁명정부, 세계대전 전후의 프랑스, 인민전선이 들어선 내전 중의 스페인, 68혁명의 파리 등 역사의 한복판을 주유했다. 혁명의 연쇄 파동 속에서 권력의 축이 이동할 때마다 동지들은 권력자의 위치로 올라섰지만, 알프레드는 한번도 역사의 승자가 된 적이 없다. 그에게 혁명이란 불의를 타도하려는 순수한 열정이 또 다른 권력투쟁의 악순환으로 변모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그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서사는 패배의 연대기일 수밖에 없다.“정치가와 범죄자의 공통점이 있다면 모든 걸 낙관적으로 본다는 것이지.” 알제리 독립전쟁에 반대하며 화자와 말다툼을 하던 알프레드의 말이다.

친구였던 20세기 주역들의 서명이 적힌 자신의 장서들을 내다파는 파리 센 강변의 헌책방 주인이 된 알프레드는 삶의 이력에 있어 작가 자신과 상당 부분 포개진다. 심부름꾼, 기계공, 짐 포장꾼 등 온갖 직업을 전전하며 독학으로 문학과 예술을 공부한 라공은 2차대전 중 레지스탕스로 활동했고 종전 후에는 주물공장 노동자, 페인트공, 헌책 장수 등으로 일했다. 50세 넘어 소르본 대학에서 건축 박사학위를 받아 대학 강단에도 섰던 그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정통한 비평가로도 이름 높다.

방대하고 꼼꼼한 자료 수집에 기초해 유장하게 역사를 풀어가는 그의 소설 작법은 ‘패자의 기억’에서도 뚜렷하게 살펴볼 수 있다. 짧고 간결한 문장 속에서 허구와 실존이 천연덕스럽게 몸을 섞는 이 소설은 ‘20세기 혁명사’이자 공적 역사가 지워버린, 세상 자체를 편력했던 한 자유롭고 강인한 영혼의 일대기다. 그는 패배했으나 결코 진 적이 없다. 1992년 나왔다가 오랫동안 절판됐던 책을 새로 다듬어 펴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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