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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소년의 가슴에 쿵쾅거림 안겨줬던 청마의 글 말라붙은 감정 적셔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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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소년의 가슴에 쿵쾅거림 안겨줬던 청마의 글 말라붙은 감정 적셔줄까

입력
2014.06.13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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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 유치환 지음

자주 지난날을 되돌아 본다. 습기 찬 기억이 많다. 쨍쨍한 햇볕 속의 기억도 끄집어 내면 어느새 물기가 맺힌다. 어른이 되면 시인이 되겠다던 학창 시절의 다짐도 그렇다. 중년이 되도록 이루지 못했고, 이제는 생각조차 닳아 헤진 꿈이다. 결혼 직후에 신문사 입사원서를 쓸 때만 해도 시작(詩作)과 문학평론을 취미 겸 특기라고 적었다. 그것이 끝이었다. 정치부와 국제부에서 구체적 현실과 딱딱한 논리에 파묻히면서 상상력과 감성을 잃었다.

하루도 빼지 않고 편지를 띄워야 했던, 샘솟던 연애감정도 함께 식었다. 영화 ‘라쇼몽(羅生門)’처럼 서로 다른 각도에서 하루의 삶과 마음을 살펴, 각각 다른 사람에게 달리 띄운 수많은 편지들도 간 곳이 없다. 만년필을 쓸 일이 없게 된, ‘PC로 글쓰기’ 환경을 탓해보지만 부질없다. 그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편지를 써댔던 청춘의 열정이 그리워질 뿐이다.

대개의 인간 행동이 그렇듯 일기처럼 편지를 썼던 것도 학습의 결과였다. 사랑이 소설 속 여주인공 같은 대상을 향한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기보다 스스로의 심정을 얼마나 끌어 올릴 수 있느냐는 주관적 능력임을 뇌리에 새겨준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은 대학 가서야 읽었다. 그 전에 고교 도서실에서 우연히 집어 든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에 가슴부터 데어야 했다.

청마(靑馬) 유치환이 어떤 존재였던가! 시골 초등학교 시절의 동시쓰기로 웃자랐다가 이내 시들어 잠자던 시적 감성을 교과서의 시 몇 편으로 간단히 두들겨 깨운 시인이었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 (중략) 아, 누구던가 /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 맨 처음 공중에 매달 줄 안 그는”(‘깃발’),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 님은 물같이 까딱 않는데 /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 날 어쩌란 말이냐”(‘그리움’) 등 의 시에 얼마나 가슴을 떨었던가.

그런 그가 교과서에 ‘단란’이란 시조가 실린 정운(丁芸) 이영도 시인에게 보낸 편지를 간추려 엮은 책이 ‘사랑했으므로’였다. 청마가 1952년부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1966년 말까지 보낸 5,000통의 편지 가운데 200여 통을 골라 실었다. 거의 매일 일기 쓰듯 사랑의 편지를 써 보낸 청마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정운의 답장은 실리지 않았지만 청마의 편지를 통해 두 사람의 마음이 이미 하나였음을 더듬을 수 있다. 이에 앞서 21세에 남편과 사별해 딸 하나를 둔 여류시인의 마음을 잡아당기기까지 청마가 3년 동안 하루도 빼지 않고 보냈다는 편지는 한결 절절했겠지만 전쟁 통에 불타 버렸다고 한다.

‘사랑했으므로’의 특별한 감동은 두 사람의 애틋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가정을 지킨 청마와 평생 수절한 정운의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일 수도 있다. 그것이 지속성이 큰 ‘플라토닉 러브’를 위한 결단이든 나약한 시인의 현실안주이든, 두 사람이 죽을 때까지 사랑과 시의 길에 동행한 것만으로도 세상의 부러움을 자아냈다. 두 사람도 보통 남녀관계를 은밀히 꿈꾸었는지 모른다. 다만 그것이 이뤄질 수 없는 꿈임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던 듯하다.

“사랑한 정운…(중략) 이제 먼 동이 트려는 동쪽 하늘, 고목 위에 조각달과 별 하나가 걸려 있고, 미륵산은 마치 나의 꿈결에도 걷히지 않는 당신 그리운 근심처럼 엷은 구름을 이고 있습니다.…(중략) 나의 고운이여, 애달픈 이여, 창창(蒼蒼)한 세월에서 우리의 소망이 곱게 바래져 가는 하루가 또 밝습니다. 7월 17일 당신의 마”.

그런 조바심과 안타까움, 정인에 대한 한량없는 그리움을 담은 책이니 막 이성(異性)에 눈뜬 17세 소년의 가슴은 쿵쾅거림을 멈출 수 없었다. 그 두근거림을 이어 온 덕분에 오랜 연애와 결혼에 성공하긴 했다. 다만 결혼생활의 타성과 세월에 연애감정 자체가 이리 말라 붙을 줄이야.

술에 취해 해바라기의 ‘다시 사랑할 수 있어요’를 부르며 문득 ‘사랑했으므로’를 다시 읽자는 생각이 들었다. 40년 전처럼 가슴이 뛸지도 모르니까.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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