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전자 해독' 치열한 경쟁으로 유용한 빅데이터 이미 축적
유사한 種 간에 연관성 커 유전적 특성 비교·분석 통해 새 치료법 개발 단서 획득 가능
산업적 가치 있는 정보 추출 위해 데이터 공유 분위기 마련돼야
독수리, 호랑이, 고래, 개구리, 거미, 핀치…. 이들의 공통점은 뭘까.
모두 최근 유전자 전체(게놈)가 완전히 해독됐다. 요 몇 년 사이 과학자들 사이에서 종(種)별 게놈 해독 경쟁이 유난하다. 아무도 분석하지 않은 종의 게놈을 누가 먼저 해독하느냐의 ‘최초’ 타이틀을 둘러싸고 치열한 신경전까지 벌인다. 그러면서도 과학자들은 곧 다가올 변화를 예감하고 있다. 적은 비용으로 누구나 게놈 분석을 하게 될 가까운 미래에는 개별 생물의 게놈 최초 해독이 더 이상 큰 의미일 수 없다. 수많은 생물의 게놈 정보는 빅데이터다. 여기서 어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느냐는 기술 수준을 넘어 얼마나 창의적인 연구를 하느냐에 달려 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한창이던 10여 년 전만 해도 생물 한 종의 게놈을 모두 알아내려면 수억 원을 들여 과학자가 며칠씩 실험실에 매달려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젠 척추동물 한 종의 게놈을 해독하기 위해 “평균 2,000~3,000만원 들여 하루만 고생하면 가능한” 시대가 됐다. 실험 장비와 분석 기술의 눈부신 발달이 가져온 변화다.
2010년 약 40개국 과학자들이 모여 출범한 ‘게놈 10K 프로젝트’도 이런 배경 덕분이다. 모든 척추동물의 속(屬)마다 한 종씩을 포함한 1만종의 척추동물 게놈을 해독해 진화의 흐름을 밝혀내겠다는 국제공동연구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호랑이와 고래 게놈을 해독한 박종화 울산과학기술대(UNIST) 생명과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척추동물 1,000~2,000종의 게놈이 해독된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가 완료되기 전 이미 과학자들이 예감하는 변화가 가시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간단한 기술만 익히면 누구나 생물의 유전자 전체를 분석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게놈 정보를 생산하는 데만 열을 올릴 게 아니라 쌓인 게놈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지 묘안을 짜낼 시점이 된 것이다.

과학자들은 게놈 정보가 “진정한 의미의 빅데이터”라고 강조한다. 초파리만 해도 유전자가 1만3,000여 개다. 척추동물은 종마다 수만 개씩이다. 지금까지 해독된 게놈 데이터가 어마어마한 규모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이들 데이터가 독립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박 교수는 “지리 정보나 이미지 자료 등처럼 다량 저장돼 있어도 서로 연관성이 적다면 ‘많은 양의 데이터’일 뿐이지만, 게놈 데이터는 종별로 밀접하게 연결돼 유기적인 네트워크를 이루기 때문에 추가 분석으로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령 고래와 하마, 사람, 오리너구리의 게놈을 비교분석하면 바닷속 같은 저산소 환경에서 오래 견딜 수 있는 비결이 보일지 모른다. 최대 잠수 시간이 북극고래 3,660초, 밍크고래 806초, 하마 240초, 사람 150초, 오리너구리 138초로 크게 차이 나는 이유가 유전적 특성 때문일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또 야행성인 부엉이와 몸집이 비슷하거나 분류학적으로 유사한 종의 게놈을 비교분석하면 새로운 안질환 치료법 개발의 단서가 나올 수 있다. 수많은 게놈 데이터 중 이렇게 산업적으로 활용 가능한 정보를 가려내는 건 사막의 모래 속에서 진주 찾기나 다름 없다. 얼마나 빨리, 효과적으로 가려내느냐는 결국 창의력 싸움이 될 거라고 과학자들은 예상한다.
창의력 경쟁을 벌이기에 앞서 갖춰져야 할 기본 여건은 데이터 공유다. 여러 연구기관이나 대학에서 나온 게놈 정보를 한 곳에 모아 관리하며 많은 과학자가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한 게놈 연구자는 그러나 “논문으로 발표한 데이터는 개인의 것이라는 인식이 강한 탓에 국내 과학계엔 아직 이런 여건이 충분히 조성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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