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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를 만났다

입력
2014.06.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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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 시인ㆍ여행작가

처음엔 그녀가 거절할 줄 알았다. 애초 쉽지 않은 나의 부탁이었다. 그녀의 직업은 돌고래 조련사.

나는 그녀에게 돌고래를 가까이 보게 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녀가 단번에 그러겠다고 해서 조금 놀랐다. 단 돌고래를 만나는 시간은 밤이어야 했다. 사람들이 많은 시간에는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정도의 거리로만 가능할 테니 그 이상을 원한다면 사람들이 없는 시간이라야 했다.

돌고래가 있는 동물원이 문을 닫을 즈음, 나는 그녀와 그녀의 돌고래를 만나러 갔다. 돌고래를 만나기 전에 조명이 꺼진 동물원 내부를 한 바퀴 돌았다. 어둠 속에서 몸을 내리고 쉴 채비를 하거나 이미 잠을 청한 동물들 사이를 걸으면서 굉장한 세계에 들어와 있음을 알았다. 어떤 동물이 불쑥 인간의 언어로 말을 걸어올 것도 같았고, 어떤 동물은 발이나 손을 내밀어 내 옷을 잡아당길 것도 같았다.

이번엔 그녀가 바다코끼리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워낙 호기심이 많은 녀석이어서 동물원 안에서 가장 손님 대접을 잘 하는 녀석이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인기척이 들리자 바다코끼리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는 조금이라도 사람에게 밀착하기 위해 이동하면서 중심을 잡으려고 허둥거렸다.

그녀가 바다코끼리의 얼굴을 제대로 보라면서 휴대폰 불빛으로 바다코끼리의 얼굴을 비쳐주었다. 바다코끼리의 얼굴을 그렇게 가까이 보는 것이 처음이어서 놀랐고, 바다코끼리와 헤어질 때 “우리 모습도 좀 봐” 하면서 우리를 향해 휴대폰 불빛을 비추는 그녀의 행동에도 조금 놀랐다.

다음은 그날의 주인공인 돌고래를 볼 차례였다. 조용하고 작은 풀장을 연상시키는 공간에는 물만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때 그녀가 박수를 치자 어딘가에 있던 돌고래들이 수면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차분한 시간, 차분한 공간의 차분한 불빛 아래 돌고래 일곱 마리가 나타나면서 한순간 분위기를 축제 분위기로 바꿔 놓았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해독이 불가능한 알 수 없는 에너지들이 공중으로 물속으로 마구 뿜어지는 중이었다.

그동안 그녀의 말을 잘 들으면서 착하게 따라다녀서 그랬는지 마침내 그녀가 돌고래를 만지게 해주었다. 나는 돌고래를 만지면서 내가 돌고래를 만지고 있다는 느낌보다도 돌고래와 함께 수영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 짜릿했다. 넓고 넓은 바다가 아닌 것은 마음에 걸렸다.

호기심을 보이는 녀석, 호감을 나타내는 녀석, 자신을 만져달라며 배를 보이는 녀석, 저쪽 한 구석에서 장난감을 꺼내와 혼자 노는 녀석.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모두가 성격과 색깔이 분명했다. 나는 그녀가 아주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양손을 모아 앞으로 쭈욱 뻗은 다음 하늘 쪽으로 힘껏 들어올렸다. 그러자 나와 눈을 맞추고 있던 돌고래가 힘차게 공중 위로 솟아올랐다. 앗, 이건 뭐지?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겠군. 내가 갑자기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그 돌고래가 언어를 어떻게 아는지 나도 잘 모르고 한 행동이었다. 나는 그냥 무의식중에 그렇게 하고 싶었던 것이고 돌고래는 내게 늘 하던 대로의 반응을 보인 것뿐이었다.

아, 그들과의 만남은 짧고 달콤했다. 몰래 저녁 시간을 틈 타 들어온 신분으로 밤을 지새울 수야 없지 않겠나 싶어 아쉽게 동물원을 나왔다.

조련사들은 회식을 어떻게 할까. 그들은 돌고래와 어떤 식으로 친구가 되어 살고 일하고 또 웃을까. 나는 그녀와 저녁을 먹고 헤어지면서 언젠가 그들이 회식을 하게 되면 슬쩍 자리에 합석을 했으면 좋겠다고 혼자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자리가 마련된다면 나의 한때 꿈이 돌고래 조련사였던 적이 있었노라 고백하겠다고 혼자 마음을 먹었다. 그때, 내 두 눈 가득 충만했던 호기심을 그녀가 읽은 것인지 헤어지면서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곧 돌고래 조련사를 뽑을 예정이에요. 물론 6개월 동안은 돌고래는 못 만지고 장갑 끼고 밥만 만들어야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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