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진영도 거부감... "친일사대주의 사고 반영"
"월남한 교인의 반공주의가 극우성향으로" 지적도
朴 정부 대일외교 기조와도 배치... 버틸지 의문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일제 식민지배와 한반도 분단을 하나님의 뜻이라며 민족 비하성 발언을 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과가 필요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균형 잡힌 시각으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내각을 총괄해야 할 총리 후보자가 상식과 한참 동떨어진 왜곡된 역사관을 가진 점에 대해 크게 우려했다. 그러면서 국민들이 과연 이 같은 역사관을 용납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보수적 역사관을 넘어서는 극단적 역사관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는 것, 이게 우리 민족의 DNA로 남아있던 것’이라는 문 후보자의 발언은 조선 침략에 나선 일본 지식인들의‘조선민족열등론’에 근거한 것이다. 문 후보자가 강연에서 인용한 윤치호를 비롯한 당시 일부 지식인들이‘일본=문명’‘조선=야만’이란 등식 아래 친일파로 전락한 것도 민족열등론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두말 할 것도 없이 이는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사관이다.
국내에서 지금도 이 같은 논리를 주장하는 이들은 보수적 학자들 중에서도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 학계 의견이다. 한국역사연구회장인 정연태 가톨릭대 교수는 “헌법정신을 부정하고 국민의 일반 상식을 부정하는 극우반공식민사관을 하나님의 뜻으로 빙자해 정당화한 것으로, 뉴라이트 역사관보다 더욱 편향돼 있다”며 “보수 개신교에서도 일제 지배와 한반도 분단 등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배경에는 일부 보수층의 뿌리깊은 친일 사대주의적 사고가 반영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일식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문 후보자가 활동하는 그룹에서는 그런 몰역사적인 발언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셈”이라며 “국민의 합리적 이성을 무시한 채 문제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정인 춘천교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해방 당시 남쪽으로 내려온 기독교인들이 반공주의에 경도돼 극우로 가는 경우가 있다”며 “문 후보자도 비슷한 분위기의 가정에서 자라 그런 발언을 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사석에서도 해서는 안 되는 말… 총리 후보자로 결격 사유
문 후보자는 자신의 발언에 대해 11일 “교회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한 말”이라고 해명했다. 역사관과 종교관은 다르기 때문에 총리로서 직무 수행과 상관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정희 한국외대 정외과 교수는 “문 후보자는 사석에서도 해서는 안 되는 말을 교회라는 공공장소에서 했다”며 “그의 이념성향 보다는 기사처럼 뭔가 남의 시선을 끌려고 하는 언론인 출신 특유의 화법이 반영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일제 식민사관과 다를 바 없는 시각을 가진 인사가 총리 직책을 수행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최진 대통령리더십 연구소장은 “행정을 지휘하는 총리의 국정철학에 따라 국민이 정부를 신뢰할 수도, 불신이 커질 수도 있다”며 “더구나 역사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이처럼 제멋대로 해석한다면 향후 국정운영에서도 거센 국민적 비판에 부딪힐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우리나라와 민족에 대한 자존감과 자긍심을 부정하는 태도는 총리 후보자로서 중대한 결격사유다”고 말했다.
외교적 망신을 살 수도
문 후보자의 위안부 발언은 일본 정부의 사죄를 우선조건으로 내세운 박근혜정부의 대일외교 기조와도 어긋난다. 이달 일본 정부의 고노 담화 검증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어 우리 정부에도 큰 부담이다. 더구나 최근 위안부 할머니 한 분이 고령으로 돌아가시면서 위안부 문제 해결의 절박성이 더 커진 상황이다.
김정인 교수는 “일본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라며 “외교적으로 큰 망신”이라고 말했다. 하일식 교수도 “마치 아베 총리가 임명한 관료의 발언 같다”고 지적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허경주기자 fairyhkj@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