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6시30분부터 저녁까지 초과 근무는 기본, 휴일도 안 줘 부실한 식사에 숙소는 컨테이너
최저임금보다도 낮은 급여에 2년3개월 견디다 결국 뛰쳐나와
고용주는 즉시 사업장 이탈 신고 신고 접수되면 불법체류자 신세
“일한 만큼 돈을 받고 싶은 게 그리 잘못된 건가요?”
11일 오후, 경기 안산 ‘지구인의 정류장(이하 정류장)’에서 만난 킴 쌈밧(26)씨는 대화 중간 중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류장은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 인권문제를 상담하고 법적 도움을 주는 곳이다. 캄보디아에서 온 쌈밧씨는 경기 이천의 모 농장에서 2년 3개월째 일을 해오다 최근 농장을 뛰쳐나왔다. 초과시간 근무 강요와 휴일 미보장 등 농장주의 지나친 노동력 착취를 더는 견뎌낼 수가 없어서다.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대부분 쌈밧씨와 같이 농장주의 횡포에 노출돼 있다. 외국인 고용 허가제를 통해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번 정한 직종을 바꿀 수 없고, 농축산업은 근로기준법상 근로 시간과 휴일 규정 적용에서 제외돼 잔업수당과 야간수당, 특근수당이 따로 없다는 점을 악용하는 농장주들 때문에 쌈밧씨 등이 피해를 입는 것이다.
월 320시간 살인적인 노동
쌈밧씨의 일과는 오전 6시 30분에 시작한다. 그는 농장 비닐하우스에서 배추 등 채소를 보자기에 포장해 배달트럭에 옮겨놓는 일을 한다. 보따리는 1개에 30㎏이 넘는다. 쌈밧씨는 “무겁지만 혼자 날라야 한다”고 말했다. 오전 8시쯤 아침식사가 나오는데 쌀밥에 김치, 콩나물무침이 전부이다. 쌈밧씨는 “그래도 일을 하기 위해선 밥을 많이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식사 후 휴식도 없다. 한국인 작업반장은 “조금만 쉬게 해달라"는 일꾼들의 하소연에도 작업 복귀를 독려한다.
그의 노동은 오후 6시 30분이 훌쩍 넘어서야 끝난다. 함께 일하는 할머니들의 퇴근 시간이 오후 5시쯤인 것과 대조된다. 농장 트랙터에 기름을 채우고 비닐하우스에 덮개를 올리는 등 잔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퇴근해 피곤한 몸을 누일 숙소는 노지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컨테이너다.
어떻게든 버텨냈던 그였지만 결국 지난 5월 동료 7명과 함께 정류장을 찾았다. 쌈밧씨는 “계약서에는 월 206~226시간 일을 하도록 적혀있었지만 실제는 315시간이나 일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농장주 이모(37)씨는 그에게 85만~110만원만 지급했다. 226시간으로 계산해도 시간당 최저임금을 합산한 것보다 적다.
2013년 국가인권위의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외국인 노동자의 월 평균 근무시간은 283.7시간에 이르고 월 평균 휴일은 2.1일에 불과했다. 이렇게 일하면서 받는 임금은 월평균 127만2,602원(남성 131만8,579원, 여성 117만7,995원)으로, 법정 최저임금 월 137만8,782원보다 적었다. 조사대상 161명 가운데 66.5%가 ‘안전장비(마스크·장갑·장화·작업복)를 지급받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고용주 “불법체류자 만들겠다” 협박
고용주는 계약서에 없는 농장의 비닐하우스에 쌈밧씨와 동료들을 돌려가며 노동을 강요하기도 했다. 이들이 일한 비닐하우스만 경기 이천 일대 440여 군데, 남양주 일대 230여 군데에 달한다. 계약서에 없는 거주지서 잠을 자는 것도 다반사였다. 농장의 동료 외국인 노동자 40여명은 모두 같은 피해를 견디며 일해 왔다. 이들 중에는 다른 고용주와 계약하고도 이씨의 지시를 받아 일을 한 이도 있었다.
고용주에게 미지급된 임금 지급과 일터를 옮기는 사업장 변경을 요구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그때마다 고용주는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불법체류자로 만들어 쫓아내겠다”고 협박했다. 고민 끝에 정류장을 찾았고, 고용노동센터에 진정을 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들 외 농장의 나머지 외국인 노동자들은 이를 포기했다. 진정이 받아들여져도 사업장 변경까지 2,3달이 걸리고 그 기간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사업장 변경 신청은 4,120건으로 같은 기간 일반 고용허가제를 통해 들어온 외국인 수가 18만2,980명인 점을 감안하면 2%에 불과하다. 법적으로 3년 간 3번, 1년에 한 번씩 사업장 이동이 가능하지만 거의 사용하지 못하는 셈이다. 임금체불 등 사업주 원인으로 인한 사업장 변경은 619건(15%)에 그친 반면, 근로계약 해지로 사업장을 이동한 비율이 81%에 달해 사실상 고용주가 원하지 않으면 사업장 변경이 불가능하다. 쌈밧씨의 고용주가 “150만원을 주면 근로계약을 해지해주겠다”고 제안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다.
고용주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쌈밧씨 일행이 진정서 접수를 위해 농장을 나서자마자 곧바로 사업장 이탈신고를 냈다. 고용노동법상 근로자가 사업장를 이탈했을 경우 최소 5일간 복귀여부를 살필 것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고용노동센터가 신고 접수 때 고용주가 이 5일을 엄수했는지 확인 않는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이탈신고가 접수된 외국인근로자는 미등록 근로자로 전락, 불법체류자 신세가 된다. 김이찬 정류장 대표는 “신고 접수를 유보해달라 요청했지만 고용노동센터 직원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말했다.
쌈밧씨와 동료들은 지난 2일 성남고용지청에 고용주 이씨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했다. 쌈밧씨는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며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고, 모은 돈으로 고향에 작은 채소가게를 열고 싶다”고 말했다.
안산=글ㆍ사진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외국인 고용허가제란?
기업이 외국인 노동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인권 유린 등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은 산업연수생 제도의 대안으로 2004년 8월 17일 도입했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는 내국인과 동등하게 산재보험, 최저임금, 퇴직금 등을 보장 받는다. 중소 제조업, 건설업, 농축산업, 어업, 서비스업 등 직종에 한해 도입하며 외국인 노동자는 한번 정한 직종을 바꿀 수 없다. 고용허가제로 취업한 외국인 수는 2013년 6월 기준 45만5,214명으로 국내 체류 외국인 155만2,554명의 30%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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