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2030 세상보기] 단 한명의 관객

입력
2014.06.11 20:00
0 0

지금까지 셀 수도 없이 많은 공연을 해왔다. 일본은 공연문화의 저변이 넓기 때문에 음악인들 스스로 큰 무대, 작은 무대를 가리지 않는다. 오히려 큰 공연장보다 유명 라이브 하우스에서 공연을 잡는 것이 더 어려운 경우도 있다. 내가 일본에서 많은 공연을 하다 보니 ‘일본에서 잘 나가는 해금연주자’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워낙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까닭에 수 많은 무대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것 뿐이다.

일본에서의 공연 중 두 가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갓 연주자 생활을 시작한 무렵 일본 최대 재즈 페스티벌 중 하나인 메이호 고원 음악제에 초대 되었다. 쟁쟁한 재즈 뮤지션들이 출연하는 음악제에는 수 만명의 사람들이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리허설을 하러 무대에 올라갔는데 벌써부터 그 기에 눌려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꼬벼루~!”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내 이름이라는 생각은 못하고 비슷한 다른 단어려니 했다. 계속되는 그 소리에 유심히 보니 그 수만 관중 가운데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흔드는 두 사람이 보였다. 그들은 나의 1호 팬인데, 어디서 공연하든 찾아와 주는 커플이다. 내가 큰 무대에서 주눅들까봐 도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메이호까지 큰 꽃다발을 사 들고 와 주었던 것이다.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다. 그리고 공연하면서 그 두 사람이 전체 관객인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전체 관객이 그 두 사람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돌이켜 봐도 참 뜨거운 순간이었다. 작고 부족했던 나를 다독이고 일으켜 준 것은 이렇게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는 ‘진심’이었던 것이겠지. 때때로 그 두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때마다 가슴이 따뜻하다.

일본에도 추석 연휴 같은 것이 있다. ‘오봉’이라고 하는데, 그날은 일주일 간의 오봉 연휴의 마지막 날이자 아카사카의 작은 라이브 하우스에서의 공연 날이었다. 노래 가사처럼 하필이면 비가 왔다. 그것도 많이.

함께 연주하는 멤버들과 “오늘 같은 날 누가 공연을 보러 오겠느냐, 나 같아도 안 오겠다”며 그냥 우리끼리 즐겁게 연주하자고 마음을 달랬다. 드디어 공연 시작할 시간이 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관객이 단 한 명이었다. 한 명도 없었으면 공연을 하지 않았겠지만 한 명이라도 있으니 해야 했다. 약간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공연을 시작했다. 첫 곡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베토벤의 ‘비창’이었다. 기타가 먼저 연주를 시작하고 그걸 듣고 있는데 기타 소리 사이사이로 톡톡톡 빗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해금을 안고 활을 드는데 갑자기 꿈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연주하면서 내 귀에 들리는 그 선율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마치, 이렇게 비가 오는 어느 날, 낯선 도시에서, 단 한 명의 관객을 앞에 놓은 외로운 무대에서 연주하라고 그 옛날 베토벤이 이 곡을 만든 게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저 단 한 명의 이상한 관객이 그 베토벤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보통 연주할 때는 음악에 집중하느라 다른 생각은 잘 못 하는데, 이 날은 오만 가지 상상이 머릿속과 공연장을 떠다녔다. 연주하는 동시에 그냥 내 앞에 앉아 연주를 듣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해금소리. 기타소리. 빗소리. 숨소리…. 모든 소리가 몸 전체로 느껴졌다. 세상에 나 혼자인 것 같으면서도 외롭지 않은…. 이상하고도 아름다운 기억이다.

이 날의 공연은 나중에 함께 연주한 멤버들이 꼽는 가장 좋은 공연 중 하나다. 무언가 알 수 없는 느낌에 이끌려 평소와는 다른 감성에 몽환적인 느낌으로 가득했고, 그러면서도 엄청나게 집중한 공연이었다.

궁금해진다. 그 단 한 명의 관객은 가끔 그날을 생각할까? 우리가 나누었던 그 알 수 없는 감각에 대해서.

공연 때 이런 생각을 한다. 단 한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해 연주하면 그 것으로 그 공연은 좋은 것이 된다고. 그리고 그 누군가를 위한 공연이 곧 나를 위한 공연이라고.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