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반성 차원 활발한 여야 대화와 협치 시도
청와대 인적 쇄신은 되레 거꾸로 가는 것 아닌가
지방선거가 끝나니 여야에 협력 바람이 분다. 여당의 소장 개혁파 도지사 당선자들이 야당 인사를 곁에 두고 정책협력, ‘작은 연정’을 하겠다고 했다. 야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순방에 동행하겠다고 손을 내밀었다. 숱한 선거가 있었지만 지금 같은 갈등 완화와 소통 움직임을 본 기억은 없다. 단지 “화합하겠다”는 한 마디 말치레만 있었을 뿐이다.
정치권의 이런 흐름은 국민적 트라우마가 생긴 세월호 참사 영향이라면 영향이겠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라는 촉(觸)을 느끼고 있음이다. 정치갈등의 구조적 악순환 속에서 국가적 재난사태에 모든 게 엉망인 시스템과 재난 사각지대를 오랫동안 방치해 온 데 대한 반성의 한 반영으로 볼 수 있겠다.
박근혜 대통령 해외순방에 대표 인사를 함께 보내겠다는 야당의 결정은 좀 뜻밖이다. 그것도 박정희 대통령 시절 노동탄압으로 분신한 노동운동가 전태일 열사의 누이 전순옥 의원이다. 그간에 야당은 대통령 이미지에 도움을 줄 이유가 뭐 있겠느냐며 청와대 제안을 거부해 왔다. 당내의 반대는 물론이고 야당 지지자나 여권에 잘못된 신호를 줄까 우려한 측면이 클 것이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한 번도 해외순방에 함께한 적이 없다. 한ㆍ러 의원친선협회장이기도 했던 김한길 당시 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11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한 당시 한ㆍ러 정상 오찬 자리에 불참해 ‘국익에 여야가 있느냐’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대결적 정치환경 탓이다.
정치에서 실제만큼 중요한 게 이미지라는 말을 새긴다면 야당은 그간 실익이 없는 일을 했다. 나라에 도움이 된다면 협력한다는 이미지는 유권자의 마음을 잡는 데도 중요하다. 대체로 30% 안팎인 중도층 성향으로 보면 그렇다. 야당이 벗어야 할 이미지 중에 하나가 ‘반대를 위한 반대’이고, 덮어써야 할 이미지 중에 하나가 ‘협력할 것은 협력한다’는 자세다.
대개 ‘초당적 협력’을 얘기하는 쪽은 여당이다. 야당 협조를 구해야 하는 입장에서 그럴 수 밖에 없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재정절벽 등 정국현안에 대한 협상이 교착에 빠질 때 공화당을 압박하는 도구로 여러 차례 ‘초당적 협력’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이는 거꾸로 상대방이 국익이나 국가적 문제의 해결 의지보다는 당파적 이해에 매몰돼 있다는 이미지를 주기에 알맞다.
그나마 야당 대표가 공세적 입장에서 초당적 협력을 말한 게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이다. 기관보고 시기 등을 놓고 정쟁화 기미도 있지만, 여론의 압력 때문이라도 여야가 세월호 문제를 초당적 자세로 다룰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방선거 뒤 새로 선출된 여야 원내대표가 회동을 정례화하기로 한 것도 협력 정치의 한 흐름이다.
물론 이러한 정치권 움직임이 치열한 선거경쟁 뒤 의례적인 제스처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이미지 정치니, 정치 쇼니 하며 의심하는 분위기도 있다. 하지만 설사 이미지 정치라도 그게 쌓이고 쌓여서 실제가, 대세가 되지 말란 법도 없다. 옳고 그름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충돌하는 가치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조정해 내느냐가 관건인 우리 정치의 성격으로 볼 때 협력 정치, 대화 정치의 실험은 다양하게 시도돼야 한다. 그게 정치의 생산성을 높이는 길이다. 갈등과 대립만으로는 국민의 정치 피로도만 더할 뿐 마음을 잡을 수 없다.
그런데 정치권에서 보이고 있는 협력 기류와 엇나가고 있는 게 총리 인선 등 청와대의 인적 쇄신 흐름이다. 기존의 국정운영이 ‘만기친람(萬機親覽)’으로 표현되는 대통령 1인 정치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는데도 말이다. 세월호 참사의 교훈도 전혀 반영돼 있지 않다는 평가가 무성하다. 문창극 신임 총리 후보자도 “책임총리, 그런 것은 처음 들어보는 얘기”라고 했다. 그렇다고 화합형, 탕평형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뚜렷한 보수 인사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그냥 내 갈 길을 가겠다는 격이다. 청와대가 꿈틀거리기 시작한 초당적 협력 흐름에 찬물을 끼얹는 이미지를 쌓고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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