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선 통폐합 등 조치로 실제 증차분 134대 불과 휴가철 겨냥 꼼수 지적도 서울시, 2개 노선만 조정 "수도권 주민은 어쩌라고" 편협한 시정 비판 목소리
# 경기 분당에서 서울로 매일 9401번을 타고 출퇴근하는 이모(45)씨. 이씨는 지난 10일 정부에서 발표한 광역버스 증차계획이 내심 반가웠다. 드디어 지긋지긋한 입석버스를 면할 수 있게 됐나 싶어서다.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오히려 눈앞이 깜깜해졌다. 국토부는 14대 늘렸다고 했지만 노선 통폐합에 따른 것이어서 실제는 한 대도 늘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입석이 금지되면 버스를 타지 말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 경기 용인 동백에서 5000번을 타고 광화문으로 출근하는 이모(40)씨는 이제 버스 타기를 포기할 생각이다. 출근시간마다 승차 전쟁이 벌어져 대폭적인 증차를 내심 기대했지만 이번 정부 대책에서 5000번 버스는 17대에서 18대로 단 1대 늘어나는데 그쳤다. 시가 전세버스 등을 동원해 출근시간 대 집중배차 한다는 방침이지만 이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내심 불안하다.
정부가 수도권 광역버스 입석 운행을 다음달부터 금지하기로 하면서 부족한 버스 수요를 해결하기 위한 증차 대책을 내놨지만 수요를 해소하기는커녕 출근 대란을 가중시킬 것으로 예상돼 논란이 일고 있다. 버스 환승시스템 개선이나 버스 요금 현실화 등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한 면피성 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일부에서는 출근수요가 덜한 방학ㆍ휴가철을 이용해 수도권 주민들을 상대로 버스정책을 실험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서울ㆍ인천ㆍ경기 등 3개 지방자치단체는 지난 10일 입석이 금지된 고속도로 등 자동차전용도로에서의 버스 입석 운행 금지에 따른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도권 62개 노선에 버스 222대를 추가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지역별로 경기도에서는 45개 노선 158대, 인천에서는 12개 노선 35대, 서울에서는 5개 노선 29대가 증차된다. 지난 4월 수도권 광역버스의 입석 운행이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온 지 두 달 만에 나온 대책이다.
222대 증차론 턱없이 부족
문제는 늘어난 버스로는 출퇴근 시간에 몰리는 수요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출근시간대인 오전 6시~9시까지 수도권 광역버스 하루 이용자는 11만 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입석 승객은 1만5,000여명으로 추산된다. 광역버스 1대의 정원이 43명인 것을 고려하면 222대를 증차했을 때 산술적으로 9,546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결국 나머지 6,000여명은 이 시간대에 버스를 이용하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버스를 확보하는 것도 문제다. 정부안은 222대 중 134대는 버스 회사들이 새로 버스를 구입하거나 전세버스 회사와 임대차 계약을 체결해 전세버스를 투입하도록 했지만 업계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서울은 버스 공영제로 시가 지원하지만 경기는 민간운수기업이 버스 구입 비용과 임대료를 고스란히 부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기도의 한 버스회사 관계자는 “오전에 한 두 번 운행하면서 하루 이용료를 내야 하는 문제로 전세 버스를 임대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지자체가 이야기하는 예비 버스의 경우에도 기사 인건비, 감가상각비 등 비용을 들여가면서 대량 확보하기가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말했다.
국토부ㆍ서울시의 꼼수 대책
일부에서는 이번 대책이 출퇴근 버스 수요가 적은 휴가철을 이용한 꼼수 대책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방학ㆍ휴가철에 입석을 금지시켜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버스 수요를 자연스럽게 지하철로 돌리려는 계산이라는 것이다. 경기도의 한 시민은 “정부 대책은 지하철 이용을 많이 하라는 주문에 다름 아니다”면서 “하지만 용인이나 화성 파주 등 지하철 노선이 많지 않은 곳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토로했다.
증차 버스도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222대 버스가 늘어나지만 노선 조정 등을 제외하면 순증차분은 134대에 불과하다. 서울시의 경우 전체 29대를 증차했다고 밝혔지만, 이중 14대는 비슷한 노선의 9401B를 통폐합 해 9401번(14대 증차지만 실제 증차는 0대) 노선을 확충한 것이어서 사실상 15대를 늘린 것에 불과하다. 서울시가 단순 숫자놀음으로 생색만 내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증차하기로 한 9007번의 경우도 입석이 거의 발생하지 않은 노선인데다 서판교에서 동판교, 판교역을 거치는 우회노선이고, 이번에 삼일로구간이 아닌 반포구간으로 변경돼 실제 증차 효과를 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서울시의 무관심과 책임 떠넘기기
상황이 이렇지만 지자체의 무관심과 책임 떠넘기기는 여전하다. 그동안 도심 혼잡 이유로 광역버스 증차를 반대했던 서울시는 이번에 겨우 두 개 노선 조정에만 동의했을 뿐 버스 정류장 플랫폼 확충과 환승시스템 정비 등 근본적인 문제는 외면하고 있다.
용인에 사는 한모(52)씨는 “서울이 막힌다고 수도권에서 들어오는 버스길도 안 내준다면 수도권 주민은 서울에 들어오지도 말라는 거냐”면서 “이렇게 광역버스 문제에 무심한 채 오로지 서울의 교통만 생각한다는 건 박원순 시정의 편협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광역버스로 출근길 만성정체를 보이는 삼일로의 경우 퇴계로 등의 좌회전 신설 등 교통체계 변화로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이런 시도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출퇴근 시간대 도심 교통난이 가중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지만 이에 대해도 뾰족한 해법이 없는 상태다. 경기개발연구원이 한 관계자는 “이번 조치는 적게 기다리고 서서 가는 버스정책을 오래 기다리고 앉아가는 버스정책으로 바꾼 감이 없지 않다”면서 “1년 이상 데이터를 축적하는 등 면밀히 조사해서 이뤄져야 할 버스정책을 세월호 여파로 너무 성급하게 추진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토부는 이에 대해 “이번 조치는 안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시적인 조치”라면서 “증차 이후 지자체와 함께 운영상 문제점을 파악해 필요하면 노선, 증차대수 조정 등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범구기자 ebk@hk.co.kr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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