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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황금빛 초원, 그리고 눈부신 초록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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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황금빛 초원, 그리고 눈부신 초록의 숲

입력
2014.06.1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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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뉘엿뉘엿 지평선 너머로 떨어진다. 광활한 대지의 삘기들이 붉은 태양빛 머금고 오글거린다. 뭍이 된 바다에 ‘황금융단’ 깔린다. 예상할 수 없었던 생경한 풍경. 퍽퍽한 도시생활에선, 이런 경치에 가끔 뒤통수 맞는 일이 무척 즐겁다. 사진=김성환기자
해 뉘엿뉘엿 지평선 너머로 떨어진다. 광활한 대지의 삘기들이 붉은 태양빛 머금고 오글거린다. 뭍이 된 바다에 ‘황금융단’ 깔린다. 예상할 수 없었던 생경한 풍경. 퍽퍽한 도시생활에선, 이런 경치에 가끔 뒤통수 맞는 일이 무척 즐겁다. 사진=김성환기자

느닷없이 등장해 뒤통수를 ‘탁’하고 후려치는 풍경이 종종 있다. 시화방조제 건설로 뭍이 된 경기도 화성 우음도 일대 풍경이 딱 이렇다.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 어느 초원을 오롯이 닮은 경치가 이 땅에 있을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던 탓에, 맞닥뜨리니 놀라움이 이토록 크다. 이 초원에 요즘 갈대 닮은 삘기(띠풀)가 지천이다. 이러니 해질녘이면 그야말로 ‘황금들판’이 된다. 가서 이거 보면 뒤통수 제대로 아플 거다. 여기에 하나만 딱 추가하면, 화성에는 융건릉이 있다. 왕릉이라 보존, 관리 잘 된 덕에 숲이 멋지다. 초록이 참 화려하다.

●우음도와 공룡알화석산지

공룡알화석. 사진=김성환기자
공룡알화석. 사진=김성환기자

‘동물의 왕국’에서나 봤던 아프리카 초원이 경기도 화성에도 있었다. 끝없는 지평선, 삘기와 갈대의 융단, 홀로 강인한 나무들…. 송산면 우음도 정상. 전망대에 올라 먼 이국의 낯선 풍경 굽어본다. 광활하고 또 광활하다.

약 20년 전 일이다. 시화방조제(경기도 시흥 오이도~안산 대부도 약 11km)가 완공된 것이. 안산, 화성 일대 너른 갯벌이 간척지가 됐다. 이때 몇몇 섬들은 육지가 됐다. 형도, 어도(어섬), 우음도 등이다. 시간 흘러 갯벌 단단해졌다. 이 위에 식물이 자라고 군데군데 나무들 독하게 뿌리 내렸다. 작은 바위섬들은 뭍의 언덕이 됐다. 눈앞에 펼쳐진 생경한 풍경은 이 모든 조화의 산물. 몇몇 사람들, 이거 보겠다며 때마다 찾는다. 사진 좋아하는 이들은 특히 유별나다.

인공으로 만든 땅이 수십년 세월 흐르며 천연한 자연이 됐다. 시간과 자연의 힘은 이렇듯 강력하다. 인간은 이 힘을 다시 거스르고 있다. 무구한 이 땅을 송산그린시티라는 거대한 도시로 개발 중이다. 속절없다. 6월이 이렇다. 하루하루가 눈부시도록 화려한데 그리운 것들은 속절없이 늘어간다. 고요한 초원에, 교차하는 계절이 부려놓은 헛헛함이 덩실덩실 춤을 춘다.

태고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본다. 공룡알화석산지가 제격이다. 방문자센터 앞 들머리에서 시작된 데크가 안쪽으로 약 1.5km 뻗어있다. 공룡알화석산지는 우음도 전망대에서 약 3km 거리. 차로 가면 5분이 채 안 걸린다.

갈대 닮은 식물은 삘기다. 이삭이 바람에 하늘거리니 꽃 핀 듯 보인다. 천지사방에 ‘삘기꽃’이다. 갈대와 비슷한 이 식물 덕에 풍경은 그 유명한 전남 순천만과 흡사하다. 7월 초까지 이렇단다. 여름 지나 가을 벌써 왔나 싶다. 봄도 신속하게 떠나버렸다. 천천히 걸으며 그리운 것들 실컷 그리워한다.

공룡알화석산지. 사진=김성환기자
공룡알화석산지. 사진=김성환기자

공룡알화석산지. 이름처럼 이 일대에서 약 1억년 전의 것으로 보이는 공룡알 화석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지난 1999년의 일이다. 방조제 생기고 바닷물 빠지며 이 속에 잠겨있던 땅이 드러났다. 여기서 화석이 나왔다. 바다이기 훨씬 더 전에 이 간척지는 본래 육지였던 셈이다. 다수의 알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공룡이 활보하던 강의 상류였다는 추정이다. 지금까지 12개 지점에서 약 30개 알둥지와 200여개 공룡알 화석이 나왔다. 학자들은 훨씬 더 많은 알들이 갯벌에 묻혀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지난 2000년, 이 가치 인정받아 현재의 화석산지 일대 약 15.9㎢의 땅이 보호지역(천연기념물414호)으로 지정됐다. 고층빌딩 숱하게 들어설 이 땅에서 여전히 천연한 풍경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순전히 깨어나지 못한 공룡들 덕분이다. 사람보다 공룡이 낫다.

‘삘기꽃’ 구경하며 데크 따라 걷는다. 뚝뚝 떨어져 자란 나무들 배경으로 ‘셀카’도 찍어본다. 거대한 바위 앞에서 공룡알도 찾아본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바위의 화석이 제법 선명하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딱 추가하면, 이 일대에서 해넘이는 잊지 말고 구경한다. 금빛으로 오글거리는 대지가 사정없이 가슴 뛰게 할 거다. 끝없이 펼쳐지는 ‘황금융단’에 눈 번쩍 뜨일 거다. 해 떨어지는 지평선, 어느 방향이든 장관이다.

●융건릉과 용주사

융건릉 소나무숲. 사진=김성환기자
융건릉 소나무숲. 사진=김성환기자

융건릉 일대는 초록이 웅숭깊다. 주변 숲이 어찌나 울창한지 숲을 거닐다가 온몸이 초록으로 물들지 모를 일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애끓는 사랑과 연민이 또 그곳에 있다. 공룡알화석산지에서 차로 약 30분 거리, 안녕동이다.

융릉과 건릉을 합쳐 융건릉이다. 그 유명한 사도세자(추존 장조)와 혜경궁 홍씨로 잘 알려진 세자빈 현경왕후가 함께 묻힌 곳이 융릉이다. 사도세자 죽음 과정을 비롯해 일련의 회고를 적은 그의 기록이 바로 ‘한중록’이다. 건릉은 사도세자의 둘째 아들이자 조선 제 21대 왕인 정조와 왕비 효의왕후의 합장묘다.

등장하는 이름만으로도 치열한 역사 느껴진다. 사도세자의 죽음은 조선 500년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 아들 정조는 경기도 양주에 있던 사도세자의 묘를 천하제일 명당으로 꼽힌 융릉으로 옮겨왔다. 인근 갈양사 터에 용주사를 중건해 융릉의 원찰로 삼았다. 죽은 사람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절이 원찰이다. 그리고 죽어서는 아비의 무덤과 지척인 거리에 묻혔다. 왕릉이 있으니 일대 숲이 보존 잘 된 것은 당연지사. 융릉과 건릉으로 향하는 길 주변으로 소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빼곡하다.

융릉에 묻힌 사도세자 알현한다. 여느 능보다 화려하다. 왕릉에선 보기 드문 곤신지(용의 여의주를 상징하는 연못)가 있고, 참도(홍살문에서 정자각에 이르는 돌길)는 널찍하다. 병풍석, 봉분의 꽃봉오리 석물도 멋지고 우아하다. 아버지를 그리워했던 정조의 마음, 아버지에 대한 애끓는 ‘사부곡’의 산물이다. 가슴 시린 장면 하나 더 겹쳐진다. 뒤주에 갇혀 생을 마감한 세자도 세자지만, 마흔 둘에 얻은, 그토록 각별했던 아들을 외면해야 했던 아버지 영조(조선 20대 왕). 다음 생에는 왕과 세자 말고 평범한 부자로 두 사람 만나기를 응원하다. 건릉도 찾아간다. 아버지 그토록 그리워한 아들이 여기 묻혀있다. 마음 헛헛한데 초록은 화사하다. 역사 치열한데 숲은 또 한없이 고요하다.

용주사까지는 들른다. 융건릉에서 지척이다. 이곳 호성전에 사도세자 내외, 정조 내외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차로 5분도 안 걸린다. 고즈넉한 경내 산책하고 천보루 옆 마당 귀퉁이 우람한 느티나무 그늘에 들어 볕도 피한다. 범종각의 범종은 국보(120호)니 챙겨본다. 고려초기 범종인데 하늘에서 내려오는 삼존불과 비천상이 참 아름답게 조각돼 있다.

●여행메모

일단 화성 공룡알화석산지 먼저 찾아간다. 제2서해안고속도로 송산-마도IC로 나와 305번 지방도 타고 제부도 방향, 사강교차로에서 우회전해 고정리 방향으로 가면 공룡알화석산지 이정표가 나온다. 공룡알화석산지에서 우음도가 가깝다. 화성 공룡알화석산지 들머리에 방문자센터가 있다. 공룡알화석에 대한 정보와 산책로 등을 이곳에서 먼저 확인하고 탐방하면 도움 된다.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운영한다. 화성시 공룡알화석산지 방문자센터(031)357-3951

융건릉에는 왕릉 진입로 외에도 왕릉을 에두르는 산 능선을 따라 산책로가 잘 나 있다. 총 길이 약 7km 된다. 트레킹 삼아 이 산책로 걷는 사람들 많다. 융릉관리소 (031)222-0142

화성=글ㆍ사진 김성환기자 spam001@hks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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