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선 수로는 포석정 연상
전북 남원의 실상사에서 연못과 수로를 갖춘 고려시대 대형 정원 시설이 거의 완벽한 상태로 발견됐다.
조계종 산하 불교문화재연구소는 실상사 담장 바깥에서 길이 16.05m, 폭 8.06m, 깊이 54㎝의 타원형 연못과 연결 수로, 연못 주변 정자였을 것으로 보이는 건물 터를 확인했다고 11일 밝혔다. 연못은 점토와 숯을 바닥에 발라 방수 처리하고 강돌을 촘촘히 깔았다. 뻘 층이 없는 것으로 보아 연꽃을 키우지는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조사단은 “고려시대의 정원 연못으로 이만한 규모와 타원에 가까운 형태, 강돌을 깔아 축조한 방식은 국내에 유례가 없다”며 “고대 정원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유적은 소규모에 네모꼴이고 완벽한 상태로 남은 게 없다.
물을 끌어들이는 수로는 강돌로 쌓은 폭 1.2m의 직선 구간 42.6m와, 여기서 갈라져 물길이 휘면서 연못으로 흘러 드는 폭 1.0m의 곡선 구간 13.8m가 확인됐다. 특히 곡선 수로는 구불구불하게 물길을 내고 술잔을 띄워 놀던 경주의 포석정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어서 관심을 끈다.
조사단은 이 연못이 실상사 경내 고려시대 초기 목탑 터와 동서 방향 축이 일치하고 주변에서 고려 초기 유물이 많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연못과 수로를 갖춘 정원은 고려 불화 관경16경변상도에 비슷한 게 보이지만 사찰에서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조사단은 강돌로 쌓은 연못 테두리 위로 걷는 길이 나 있는 것으로 보아 포행(걸으면서 하는 참선)을 중시하는 불교 선종의 전통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분석했다.
이번 발굴에서는 연화문 수막새, 초화문 암막새, 한자로 ‘실상사’가 새겨진 기와 등 유물 80여 점도 나왔다. 연못 등 정원 시설과 유물이 발견된 장소는 실상사가 양혜당과 보적당이라는 부속 건물을 지으려던 자리여서 설계 변경이 불가피해졌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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