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 출범 후 CEO 줄줄이 징계...황영기·강정원·어윤대 이어 임영록 회장도 불명예 퇴진 위기
정권 입맛 따른 관치 인사... 회장·행장 투톱, 사안마다 갈등 사외이사들마저 줄서기 관행
왜곡된 지배구조... 은행이 지주90% 이상 차지 지주·은행 별도 이사회도 원인
6년 전 출범 당시만 해도 ‘리딩 금융그룹’으로 주목받던 KB금융. 지금은 추락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 동안 거쳐간 최고경영자(CEO)들이 모두 불명예 퇴진을 한 데 이어, 이번엔 회장(임영록)과 행장(이건호)이 동시에 중징계를 받는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됐다. 물론 다른 금융회사에서도 CEO들의 수난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KB금융처럼 끊이지 않고 되풀이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도대체 왜 KB금융의 수난이 멈추지 않는 걸까.
KB금융의 ‘CEO 잔혹사’의 시작은 초대 회장인 황영기 전 회장. 우리금융 회장으로 재직할 당시 파생상품 투자로 대규모 손실을 초래했다는 이유로 ‘직무정지’라는 무거운 징계를 받고 1년여만에 회장직을 내려놓았다. 강정원 전 행장은 2009년 9월 후임 회장에 내정됐지만 카자흐스탄 투자손실로 발목이 잡혔다. 결국 금융당국의 중징계가 확실해지자 내정자 신분을 사퇴(2009년 12월)한 데 이어 이듬해 7월 행장직에서도 물러났다. 어 전 회장도 ING생명 인수를 놓고 사외이사들과 갈등을 빚은 데 이어 일부 사외이사 선임을 막기 위해 내부 정보를 외국회사에 흘린 ISS 보고서 사태 등으로 금융당국의 검사를 받게 되자 부담을 느껴 연임을 포기했다. 어 회장은 퇴임 후 경징계(주의적 경고)를 받은 데 이어 카드정보 유출사태로 최근 문책경고에 해당하는 중징계를 통보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KB금융 수장들이 이처럼 줄줄이 낙마하는 가장 큰 원인은 고질적인 낙하산 인사라는 게 금융권의 공통된 진단이다. 이명박 정부 초기 초대 회장에 오른 황 전 회장은 이른바 ‘MB맨’으로 분류됐던 인물. 당시 국민은행장이던 강 전 행장과 회장 자리를 두고 경합을 벌이다 자리를 꿰찬 이후 두 사람은 주요 사안마다 마찰을 빚었다. 강 전 행장은 황 전 회장 중도 사퇴 후 김중회 전 KB금융 사장 등 이른바 ‘황영기 인맥’을 대거 교체할 정도로 암투가 심각했다.
강 전 행장이 회장 자리에 오르지도 못한 채 옷을 벗은 것 역시 금융당국의 뜻을 거스른 자리 욕심 때문이었다. 그가 회장에 내정된 후 금융감독원은 10여일간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KB금융 임직원 컴퓨터는 물론 강 전 행장의 운전기사, 심지어 경영 활동과 무관한 사생활까지 조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어 전 회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금융계 4대 천황’으로 불렸던 인물. 본인은 여러 차례 연임 의지를 피력했지만, 정권 교체 후 조여오는 금융당국의 압박을 비껴갈 수 없었다. 어 전 회장 역시 당시 사장이던 임 회장과 사사건건 의견 충돌을 빚었다. 옛 재정경제부 출신의 ‘관피아’인 임 회장이 어 전 회장이 가장 공들인 ING생명 인수 건에 대해 반대하면서 둘의 관계는 극도로 악화된 것으로 전해진다. 임 회장은 취임 후 이른바 ‘어윤대 지우기’에 나섰지만, 결국 본인 또한 이건호 행장과 갈등을 빚으며 퇴진 위기에 내몰렸다.
금융권에서는 지주사 사외이사들이 회장을 추천하고, 회장이 이들과 함께 행장을 선발하는 구조를 갖춰야 하지만 KB는 경영진 대부분이 낙하산으로 임명되다 보니 회장과 행장간 대결구도가 이뤄지고, 사외이사들조차 줄서기를 하는 행태가 되풀이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KB는 정부지분이 전혀 없는 민간 금융사인데도, 매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회장, 행장 자리를 관치 낙하산 인사들이 차지하고 있다”며 “회장과 은행장 투톱 체제이다 보니 서로 맞서며 영향력을 높일 생각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KB금융의 지배구조도 문제다. 겉으로는 은행 증권 보험 저축은행 등을 포괄한 모습이지만 실상은 은행이 지주사 90%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편중돼 있다. 자연스레 지주사 회장조차 은행에 대한 관심이 높게 되고, 은행장은 실권을 내놓지 않으려고 대립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지주 이사회와 은행 이사회 등 2개의 의사결정기구를 가진 것도 내분의 원인으로 꼽힌다. KB금융은 국민은행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지만 국민은행은 별도의 이사회와 감사를 두고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하고 있어 충돌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임 회장과 이 행장이 전산시스템 교체를 놓고 갈등을 벌이는 것도 이런 이유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반복된 KB금융 사태를 교훈 삼아 낙하산 인사 근절은 물론 지주회사의 대대적인 지배구조 개편방안을 고민해봐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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